45 고운사 왕의 환갑 축하 위해 불당을 짓다니… 영조 기로소 입소 기념해 고운사에 원당 설치 유학자관료의 불교인식 변화 보여주는 한 단면 <조선왕조실록>에서 불교 관련 기사들을 읽다 보면 특이한 점이 한가지 발견된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등장하던 불교 이단 논쟁이 조선후..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8.21
44 보광사 ‘무수리 아들’, 영원한 주홍글씨 콤플렉스 벗으려 평생 생모추숭 벌였지 뒤주에 아들 가둬 죽이는 병적 부성애 표출 영조가 왕위에 오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그는 왕비의 아들도 아니었고, 왕비가 아들로 삼은 왕자도 아니었다. 후궁의 아들이나 손자가 보위에 오른 경우..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31
43 파계사와 화엄사(下) 근정전보다 큰 건물 지리산에 선 까닭 숙빈최씨의 불심, 연잉군(영조) 생산으로 결실 영원스님 기도로 왕자 얻자 파계사 원당 지정 숙빈 최씨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아들을 잘 낳는 후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술했듯이 숙빈은 연달아 아들 셋을 생산했다.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24
42 파계사와 화엄사(上) 조선 최고 로비스트 ‘최 무수리’ 스마트함으로 숙종 사로잡은 숙빈최씨 ‘베개 밑 송사’로 정적을 일망타진하다 숙빈 최씨는 ‘조선 최고의 로비스트’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여인이다. 야사에는 숙종이 어두운 밤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던 최 무수리와 단 하룻밤 사고를 치는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17
41 봉국사 (下) ‘억불군주’, 요절한 공주 위해 절 짓다 왕실원당 혁파하고 비구니원 철폐했던 현종 두 딸의 죽음 겪은 후 부처님께 무릎 꿇다 두 딸이 죽은 이듬해 명성왕후는 딸의 무덤 인근에 절을 창건했다. 현종은 이 절에 직접 사액을 내려 봉국사(奉國寺)라 명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찰의 창..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10
40 봉국사 - (上) 현종은 왜 후궁을 두지 않았을까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중전만 사랑? 성깔 대단한 명성황후 위세에 눌려? 명성왕후 매달릴 곳 오직 불교밖에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 후궁을 두지 않은 인물은 현종과 경종, 순종 등 총 3명이다. 경종은 워낙 병약했던 데다 재위 기간이 4년에 불과했고 순종은..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07
39 자수원(下) 현종이 억불정책 펼쳤다? 글쎄… 비빈 출신 비구니 한 명도 없게 되자 인수원 등 도성 안 비구니원 폐쇄해 현종 2년(1661) 인수원과 자수원이 폐사되었다. 두 비구니원을 폐사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당대의 고승 백곡처능은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려 비구니원 폐사의 부당함을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04
38 내원암(下) 조귀인, 팜므파탈의 모든 것 갖췄으나… ㆍ인조 치세 중 4차례 저주사건 통해 권력 독점 영원한 권력 위한 佛事…믿었던 효종에 뒤통수 인조는 왜 이토록 깊이 조귀인에게 빠져들었던 것일까. 조귀인이 후궁으로 처음 책봉된 것은 1630년으로, 정묘호란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02
37 내원암(上) 팜므파탈이라 하기엔 억울한 ‘장옥정’ 죽을 때까지 지켜주겠다던 숙종의 변심에 몰락 경종마저 단명해 ‘악녀의 대명사’ 오명 못 벗어 팜므파탈은 오늘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대중매체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소재이다. 치명적 매력을 지닌 미모의 여성 그에게 영혼을 빼앗긴 남..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7.01
36 자수원 (上) 충절.의리의 상징 ‘자수원 비구니’ 淸 예친왕이 소현세자에 준 전리품 ‘굴씨’ 죽어서도 북벌 발원한 ‘중화의 절개’ 되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돌아올 당시 명의 환관 5명과 궁녀 4명도 함께 조선으로 입국했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예친왕 도르곤과 깊은 교유를 맺었는데 이들은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