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려한 인맥 가졌지만 국제그룹 해체 유탄 맞았던 김종호 1980년대 초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김종호 세창물산 회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가 10년째 사채 시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사채 시장 규모가 많이 줄어든 탓이었다. 도자기와 완구류 등을 제작하던 세창물산을 운영하고 있던 김 회장이었으나 그의 주 무대는 사채..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24
6 무일푼으로 증권사 회장 된 '백한바퀴' 김형진 “이 시간 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 이루어진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긴급 명령을 발표하자 명동 사채시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망했다”는 푸념이 명동 사채 시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자금은 ..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23
5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돈 대줬던 남상옥 1961년 3월 28일.김종필 육본 정보참모부 기획과 과장(중령)은 박정희 육군 제2군 부사령관(소장)의 서신을 가지고 삼화빌딩 309호실을 찾았다. 사무실에서는 삼화빌딩의 사장이었던 남상옥씨가 앉아 있었다. 서신을 읽어본 남씨는 김 중령에게 1백20만환을 건네주었다. 며칠 뒤인 4월 4일엔 ..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22
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외손녀사위로 둔 '대부' 이상순 1조 원대 거부로 알려진 이상순 전 일산실업 명예회장은 한때 명동에서 ‘대부’로 통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사채업자들 사이에서는 이씨가 하루에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1000억원대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때문에 대부와 함께 ‘현금왕’이라는 타이틀도 늘 이씨를 따라다..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20
3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배워갔던 '백 할머니' 1970년대 말.매일 증권사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노인이 있었다. 키는 어림잡아 150㎝ 정도 안팎으로 작고 뚱뚱한 노인이었는데 노인은 한 손에 영국 타임스지(the Times)를 들고 증권사 객장에 앉아 한참 동안 시세판을 바라보곤 했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영문 잡지를 술술 읽어내려가며 경제 ..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20
2 "서울 들어가려면 '광화문 곰'의 땅을 안 밟을 수 없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통일교육원 2층에는 가로 60㎝, 세로 80㎝ 크기의 부조상이 하나 서 있다. 부조상 하단에는‘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이곳 통일교육원 부지 1만6878평을 흔쾌히 기부하신(1987.8.12) 송암 고성일님의 높고 푸른 뜻을 기립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부..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19
1 재벌 총수도 일어나 전화받은 '현금왕' 단사천 사채업자(私債業者)라고 하면 고리의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되받는 형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때문에 사채(私債)를 사채(死債)로 여기며 거들떠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채는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분.. 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큰손들 201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