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신륵사 ‘죽은 세종’이 절을 살리다 잘되면 내 탓,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 속에는 조상님이 내 DNA를 시원찮게 물려주셨다는 푸념도 섞여있지만,그보다는 죽은 조상이 복을 제대로 안내려줘 내 팔자가 안 풀렸다는 원망이 더 크게 깔려 있다. 조상에 대한 불..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30
14 정업원 (上) 몰락한 왕실여인들의 ‘해방구’ BC 3000년경 인간의 삶이 문자화되기 시작한 이래 역사의 주인공은 항상 ‘힘있는 남자’였다. 파워풀한 마초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여자들은 그 싸움의 전리품이나 교환수단 혹은 희생물로 이용되었다. 여자가 전리품이 되는 경우는 십중팔구 그를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27
13 동학사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가을이 되면 항상 그리워지는 사찰,계룡산 동학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충절(忠節)의 표상이었다. 동학사 초입에 위치한 숙모전은 김시습이 사육신과 단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사육신이 죽은 그날 밤,김시습은 그들의 시신을 노량진에 암매장한 뒤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24
12 원각사 등 ‘벌거벗은 임금님’의 쓸쓸한 말로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쩌다 벌거벗게 되었을까. 단순히 재봉사가 임금님의 재물을 노리고 일으킨 사기행각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했던 것일까. 사실 그 해답은 안데르센 소설의 맨 첫머리에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임금님이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스..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21
11 금몽암 꿈마저 잃어 금몽(禁夢)이라 했나 ▲ 탁효정 전임연구원단종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생모 현덕왕후를 잃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길러준 할머니 혜빈을 버려야 했다. 열일곱 해를 살다 간 단종의 짧은 여정은 ‘발 없는 새’의 그것과 흡사했다. 단종을 낳은 직후 며느리..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18
10 견성암 청상고부의 비원(悲願) 서린 ‘강남큰절’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뿌리깊은 나무>에서 광평대군이 꽃미남 왕자로 등장하여,온 나라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뿌리깊은 나무>가 한창 방영될 무렵 광평대군이 검색어 1위로 등극하였으니 세종 한석규나 똘복이 장혁..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15
9 왕실 비구니원 후궁들 떼지어 비구니 되다 1422년(세종 4) 5월10일 태종이 죽고 난 직후,궁궐 안에서는 의빈 권씨를 비롯한 태종의 후궁들이 은밀히 모였다. 그들은 모두 삼단같은 머리를 자르고 승려계를 받았다. 궁궐 안팎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 아니, 몇몇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 침묵을 지켰다...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12
8 연주암 둘째의 설움 담은 이름, 연주(戀主) 둘째는 항상 서럽다. 형한테 치인 것도 서러운데 동생이 치받고 올라온다. 둘째의 설움으로 치자면야, 이분보다 더한 이가 또 있을까. 효령대군 이보(李補). 양녕 다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은 꿈도 못 꿔봤건만,형 폐위시키더니 이제는 ..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09
7 용문사와 소헌왕후 ‘넝쿨당’ 윤희 부럽지 않은, 그러나… 마누라가 죽으면 변소 가서 세 번 웃는다는 속담이 있다. 새 장가를 들게 되었으니 사람들 앞에서 웃을 수는 없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는 부인이 죽으면 관 옆에서 마을 남자들이 밤새 축제를..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06
6 내불당 왕노릇 못해먹겠다! 세종이? ▲ 탁효정 전임연구원얼마 전 조선시대 전공자 몇이서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들깨가 들어간 삼계탕을 열심히 먹던 중,고문서의 대가인 안 박사 왈,“조선 역사상 최고의 독재자는 세종 이었고,그 다음이 영조였어”란다. 이에 정치사 전공자인 임 박.. 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01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