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헌영이 공산주의 활동 중 만난 현앨리스
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이에 참가했으며 휴교로 인해 개별적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YMCA 영어반과 승동교회 성경반에서 영어 공부를 하며 미국 유학을 준비 중 학자금을 마련해주겠다던 윤돈구(尹暾求)가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유학의 꿈도 사라졌다. 그것도 운명이었다. 역사에서의 가정이란 덧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윤돈구가 죽지 않고 박헌영이 미국 유학을 가 이승만(李承晩)에 못지않은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했더라면 그의 운명과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교육 환경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박헌영은 수재로서 일찍부터 정규적인 영재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 열정의 배후에는 학업을 통한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렬했다.실의에 빠진 박헌영은 1920년 가을,일본으로 밀항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