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37 내원암(上)

浮萍草 2013. 7. 1. 00:00
    팜므파탈이라 하기엔 억울한 ‘장옥정’
    죽을 때까지 지켜주겠다던 숙종의 변심에 몰락 경종마저 단명해 ‘악녀의 대명사’ 오명 못 벗어 므파탈은 오늘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대중매체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소재이다. 치명적 매력을 지닌 미모의 여성 그에게 영혼을 빼앗긴 남자와 그 남자의 권력을 사랑하는 여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위험 스러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를 고루 갖춘 이 아이콘은 19세기말부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클레오파트라, 살로메, 유디트, 헬레나 등 서양의 대표 악녀들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에서도 팜므파탈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장녹수와 장희빈이 ‘전통적인’ 팜므파탈이라면 미실과 천추태후, 조귀인 등은 최근 새롭게 떠오른 뉴페이스들이라 하겠다. 서양에서는 이미 르네상스 때부터 팜므파탈이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가 아닌 자신의 매력을 활용하는 적극적인 여자로 묘사돼온 반면 유교문화권인 한국 일본 중국의 팜므파탈은 최근까지도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로 취급돼 왔다. 최근 TV에서는 조선후기 양대 팜므파탈로 꼽히는 장희빈과 조귀인이‘장옥정 사랑에 살다’와‘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 팜므파탈은 불어로 ‘치명적인 여자’라는 의미이다. 팜므파탈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신비로우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지닌 여성, 관능적이면서도 위험한 여성만이 팜므파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팜므파탈의 기본요소에 비추어볼 때 장희빈은 여러모로 억울한 측면이 많다. 그녀가 중전의 자리에서 내쫓겨나 사약까지 받은 것은 죽을 때까지 지켜준다고 했던 남자 숙종의 변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새로운 연인 숙빈최씨에게 빠져들면서 숙종은 장희빈에게 쏟아 부었던 사랑과 권력을 모조리 거두었다. 그리고 장희빈을 둘러싼 남인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폐위된 인현왕후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다. 이른바 갑술환국이다. 사실상 장희빈은 당쟁의 희생양이었던 측면이 다분하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와 후비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최씨까지 숙종을 둘러싼 여인들이 대부분 서인의 편에 서있었던 반면 장희빈은 남인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서인이었던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에서 인현왕후는 ‘둘도 없는 어진 마누라’로 장희빈은 ‘희대의 악녀’로 묘사된 것 또한 지극히 정치적인 플롯 설정이었다. 장희빈이 악녀가 되어야 그녀를 죽인 이들의 명분이 바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희빈을 쫓아낸 서인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권력을 독점했고 장희빈과 경종의 편에 섰던 남인은 200여 년간 중앙정계에서 완전히 배제되다시피 했다. ‘장희빈이 악녀가 돼야 조선이 바로 선다’는 것은 집권 노론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숙종으로부터 서인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장희빈은 아들 경종이 단명하는 바람에 신원이 복원되지도 못한 채 ‘악녀의 대명사’로 남았다. 이에 비해 인조의 후궁 조귀인은 진정한 팜므파탈이라고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여인이었다. 조귀인은 음모와 모사 투기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인조는 1625년 정비 인열왕후가 죽은 뒤 1638년 장렬왕후를 계비로 맞이하자 조귀인은 인조에게 새 왕후가 중풍이 들었으니 병이 옮지 않도록 왕비전에 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인조는 내전에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고 창경궁에서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에는 왕비를 창경궁에 남겨놓은 채 조귀인만 데리고 떠났다.
    불교신문 Vol 2919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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