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14 정업원 (上)

浮萍草 2013. 4. 27. 07:00
    몰락한 왕실여인들의 ‘해방구’
    
    BC 3000년경 인간의 삶이 문자화되기 시작한 이래 역사의 주인공은 항상 ‘힘있는 남자’였다. 
    파워풀한 마초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여자들은 그 싸움의 전리품이나 교환수단 혹은 희생물로 이용되었다.
    여자가 전리품이 되는 경우는 십중팔구 그를 보호하던 남자가 싸움에서 진 결과였다. 
    몽골침입,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조선시대에 수많은 사화(士禍)나 왕위투쟁 뒤에는 반드시 노비가 되거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여자들이 발생했다.
    이 가여운 여인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구니가 되는 것이었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와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나란히 비구니가 된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였다. 
    간혹 역사책에서는 이들이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다거나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속세에 
    대한 미련이 없어 출가를 했다고 해석하는데 이는 매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비구니가 된 보다 큰 이유는‘살아남기’ 위해 왕의 부인으로 왕의 딸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비구니가 되는 것 외에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말에 쓰인 <한사경>에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간 뒤 신숙주가 세조에게 정순왕후를 자신의 첩으로 달라고 했다는 야사가 전해
    진다. 
    또 <연려실기술>에는 경혜공주가 순천으로 유배갔을 당시 순천부사가 공주를 노비로 부리려 하자 공주가 버럭 화를 내며“내 비록
     귀양을 왔을지언정 왕의 딸인데,수령이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
    이처럼 울타리가 사라진 여자의 운명은 ‘길가에 핀 꽃’의 신세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국모나 공주라 해도 말이다.
    
    ㆍ한 명의 인간으로 살고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고자
    선택한 외길, 삭발 염의
    조선전기에는 수많은 왕실여인들이 비구니가 되었다. 왕이 죽고 난 후에 남겨진 후궁들,역모에 연루돼 남편을 잃은 여인들 늙어서 갈 곳 없는 궁인들이 스스로 비구니가 되었다. 그런데 비구니가 된 여인들이 머물렀던 곳을 추적해보면 묘한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선왕의 후궁들은 비구니가 된 이후에도 궁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내명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궁을 불당으로 개조해 살았다. 비구니가 되었을지언정 후궁으로서의 지위와 권력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이에 비해 남편이 역적으로 몰려 집안 전체가 폭삭 망한 경우에는 정업원이라는 사찰로 들어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귀의처가 정업원이었던 셈이다. 벼랑 끝에 몰려 비구니가 된 이들의 신세를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전근대사회에서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남자의 부속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해방구이기도 했다. TV사극에 등장하는 비구니들은 하나같이 팔자 사납고 한 많은 여인들 일색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비구니만큼 신바람 나게 사는 여자들도 없었다. <선조실록>에는 정업원 비구니들이 떼를 지어 금강산 유점사에 놀러 갔다가 들키는 바람에 조정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사건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당시 비구니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나 남녀유별(男女有別)과 같은 유교 윤리와 전혀 상관없이 매우 자유롭고도 신나게 살았음을 보여준다. 조선 천지에 비구니를 제외하고서 전국을 자유롭게 유랑할 만큼 팔자 좋은 여자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비구니는 ‘여자’가 아니라 한때 여자로 살았던 적이 있는 ‘승려’였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무애자재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해방구를 찾아 조선시대 여성들은 사찰로 향했다. 조선시대 불교가 여성들의 불심에 의지해 그 생명력을 지켜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성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불교를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곤 한다. 그들은 불교를 통해 비로소 ‘권위나 인습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었다.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불교신문 Vol 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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