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6 내불당

浮萍草 2013. 4. 3. 07:00
    왕노릇 못해먹겠다! 세종이?
    탁효정 전임연구원
    마 전 조선시대 전공자 몇이서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들깨가 들어간 삼계탕을 열심히 먹던 중,고문서의 대가인 안 박사 왈,“조선 역사상 최고의 독재자는 세종 이었고,그 다음이 영조였어”란다. 이에 정치사 전공자인 임 박사가 맞받아치길“독재를 했으니까 그 정도 업적이 나왔지,아니면 왕 한 명이 그렇게 많은 사업을 벌일 수가 없다니깐.” 경제사 전공자인 이 박사도 한마디. “민주적인 왕이나 대통령치고 대단한 업적을 세운 지도자는 없었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한꺼번에 이루기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이에 불교사 전공자인 탁 박사는“아~~”하는,바보 도(道) 통한 소리만 연달아 내뿜고 있었다. 한 번도 세종을 독재군주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지라 곰곰이 생각해보니,적어도 내불당을 건립할 때의 세종은 고집불통에다 벽창호이고 유아독존적인 군주가 분명했다. 세종은 소헌왕후가 죽은 이후 마음의 상심이 깊어 불교에 심취했다고 실록에는 나와 있다.
    하지만 소헌왕후가 죽기 훨씬 전부터 세종은 불교에 깊이 빠져있었다. 세종 재위 20년(1438)에 흥천사에 있던 불사리를 몰래 궁궐로 들여왔다가 신하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 사건도 있었고,흥천사 경찬회에서 읽는 글(疏文)에는 ‘보살계를 받은 제자(菩薩戒弟子) 조선국왕’이라 서명 하고 인장까지 찍었다. ㆍ조선 최고의 聖君 세종이 내불당 다시 세운 것은 성리학 도그마 깨려는 방편
    공공연히 승려를 불러 궁궐 안에서 법회를 보고 신미 같은 고승과 독대를 하면서 불교를 토론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신하들에게 대놓고“나는 불교를 좋아하는 왕이다. 그럼 나도 이단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10여 년 간 불교에 깊이 심취해있던 세종이 재위 30년쯤 되니 신하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해서 아예 궁궐 안에 불당을 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내불당을 건립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왕조국가의 표상인 왕실 내에 다시 불교신앙을 허용한다는 선언이었다. 영의정부터 말단 서기까지 하나같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사직 성명을 냈다. 성균관 유생들은 아예 출강을 거부하고 사부학당 학생들까지 수업 도중 모두 해산해버렸다. 결국 세종이 꺼내든 카드는 “왕 노릇 못해먹겠다”였다. 세종은 정말 짐을 싸들고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집으로 가버렸다. “ 나 이제 큰 아들에게 왕위 물려줄 테니, 함께 잘들 해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신하들 입장에서 보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결국 신하들이 잘못 했으니 돌아오라고 빌면서“혹시 내불당 위치라도 궁궐 담벼락 바깥으로 옮길 생각 없으시냐”고 ‘타협안’을 내놓았지만,세종은 원안 그대로 내불당을 창덕궁 안에,그것도 원하던 날짜에 완공시켰다. 유교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스스로 최고의 성군이 되길 바랐으면서도,세종은 왜 그렇게 내불당 건립에 열심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도 왜 불교를 좋아하는 군주가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세종이 매우 명석한 두뇌를 지닌,높은 영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세종 또한 정치 초년병일 때는 철두철미한 유교군주임을 표방했다. 하지만 그는 재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불경을 읽기 시작했고,말년에 이르면 노골적으로 불교를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세종은 박식한 학문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성리학의 도그마를 스스로 깨뜨렸다. 세종이 가장 열심히 읽은 경전이<능엄경>이라는 사실은 그가 선(禪)을 통해 무애의 지점을 맛보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리학의 이분법적 사고에 한계를 느낀 세종은 불교를 통해 일원론적 세계관을 접했다. 다시 말해 세종의 내불당 건립은 자신이 경험한 사고의 전환을 대중들에게,특히 성리학의 도그마에 빠진 관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독재군주 세종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내불당을 건립했고,유교국가의 이단임을 자처했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와 역사학자들이 독재 군주에게 끌리는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불교신문 Vol 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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