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12 원각사 등

浮萍草 2013. 4. 21. 07:00
    ‘벌거벗은 임금님’의 쓸쓸한 말로
    거벗은 임금님은 어쩌다 벌거벗게 되었을까. 
    단순히 재봉사가 임금님의 재물을 노리고 일으킨 사기행각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했던 것일까. 
    사실 그 해답은 안데르센 소설의 맨 첫머리에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임금님이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아주 멋지다고 생각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만심이 크면 클수록 그 자만심에 의해 판단력은 흐려질 수밖에 없고, 주변에는 감언이설을 지껄이는 인간들만 가득하게 되는 법
    이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독재자가 되는 것도,자신이 내린 판단은 전부 옳다고 믿게 되는 것도 주변에 Yes형 인간들을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임금님이 벌거벗게 된 것 또한 주변에 바른 말을 하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사기꾼 재봉사는 임금님의 자만심을 역이용해 그를 홀라당 벗김으로써 임금님의 자아도취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세조실록>을 읽다보면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조가 집권한 지 8년 되는 해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기이한 이적현상들이 발발했다. 
    세조가 원각사를 세우자 하늘에서 4가지 꽃비가 내렸으며,장의사를 들르니 오색구름이 그를 뒤따라왔고,낙산사에서 법회를 열면 
    사리가 오색찬란한 빛을 내며 분신하기도 했다.
    세조가 금강산에 가면 담무갈보살이 나타났고 오대산에 가면 문수보살이 나타났으며,속리산에 가면 부처님이 방광(放光)을 하고, 
    양평 상원사에 갔을 때는 관세음보살이 현상(現相)했다.
    <실록>에는 약 40여건의 이적현상이 나타나는데,세조가 일본 국왕에게 보낸 친서에는“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우리나라에서 7000여
    건의 신이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자화자찬까지 담겨 있다.
    직필(直筆) 원칙에 따라 반드시 일어난 사실,확인된 사건만을 적는 실록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는 것은 더구나 외국 국왕에게 보내는 
    공식서한에까지 이적현상을 소개한 것은 매우 놀랍고도 특이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ㆍ조카 동생 죽이고 차지한 
    왕좌 지키려 공포정치 자행
    말년에 돌아온건 회한과 병
    그런데 왜 세조대에 이런 신이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세조의 병이 깊어지면서 일종의 정신착란증이 발병한 것이라 하고,또 어떤 학자들은 세조가 이적현상을 빌미로 전제정치를 강화한 것이라 설명한다. 세조의 시대는 결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위험하고 불안한 공포정치의 시대였다. 세조는 조카를 죽이고,친형제를 죽이고서 왕이 된 인물이다. 오로지 왕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인간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무수한 일들을 자행했다. 이런 세조를 왕좌에서 내쫓을 명분은 넘치고도 넘쳤다. 자신을 위협하는 요소가 크면 클수록 세조는 공포와 공작 정치를 남발함으로써 그 요소들을 제거했다. 세조 8년부터 13년까지 전국 곳곳에서 7000여건의 이적현상이 발생한 것도 정치공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이 벌거벗은 임금에게 ‘너 벌거벗었어’라는 이야기를 해준 것은 세조 자신에게 찾아온 병이었다. 세조는 말년에 온몸에 종기가 올라 온몸이 누런 고름으로 가득했고,제대로 누울 수도 없을 만큼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에도 항상 시뻘건 피고름이 맺혀 있어 누가 보아도 천벌을 받은 형상이었다. 세조가 그토록 깊은 병에 걸린 것은,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세조 자신이 쌓은 높은 선업(善業)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조는 왕자 시절 부왕 세종의 명을 받고 <능엄경>,<원각경>과 같은 경전을 한글로 풀어냈으며,<석보상절>과 <월인석보> 같은 최초의 한글경전을 손수 지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간경도감을 통해 이 경전들을 찍어내 전국에 유포했다. 이 공덕으로 인해 일반민들까지 부처님의 경전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한글의 유포 또한 더 빨리 이루어졌다. 이처럼 수승한 능력을 지닌 불제자에게 자신의 과보가 보이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보살의 공덕을 지은, 하지만 친혈육을 죽인 앙굴리말라에게 부처님은 온몸가득 종기를 돋게 했다. 이는 세조의 죄의식이 일으킨 마음의 병이라 할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트라우마’가 바로 세조가 앓은 병의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어떤 처방을 써도 소용이 없었던 세조는 전국 방방곡곡의 절을 찾아다니며 참회의 기도를 올렸고,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희생된 인물 들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은 권력에 도취된 세조에게 종기라는 과보를 내려줌으로써 그의 벌거벗은 영혼을 돌아보게 하였다. 살아생전 내려진 업경대가 부처님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비였던 셈이다.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불교신문 Vol 28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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