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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10干 첫째 ‘甲’의 짓… 강자의 부정행위 뜻

浮萍草 2016. 4. 27. 11:05
    “이것은 말이옵니다.” 사슴을 보고 이렇게 말한 사람은 살았다. 사마천의 ‘사기’에 전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다. 진시황이 순행 도중 병으로 죽으면서 태자 부소(扶蘇)가 장례를 주관하라는 조서를 남겼다. 그러나 환관 조고(趙高)는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 태자를 죽이고 후궁 소생인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만들었다. 황제를 꿈꾸던 조고는 사슴을 새 황제에게 바치며 “이것은 말이옵니다”라고 했다. 2세 황제는 웃으며 대답했다. “승상이 실수를 하는구려. 사슴을 보고 말이라니.” 좌우의 대신들에게 조고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말이라고 대답한 사람만 자기편이라고 살려주고, 사슴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죽였다. 목숨을 요구하는 엄청난 갑질이다. 갑질이란 각종 계약서에서 힘 있는 쪽을 ‘갑(甲)’, 상대를 ‘을(乙)’로 가리키는 데서 비롯된 말로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갑’은 10간(干)의 첫째인 ‘갑(甲)’이고,‘질’은 ‘짓’과 마찬가지로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질’이 붙는 말은 도둑질,서방질,계집질,발길질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도 많지만 삽질, 물질(해녀),호미질, 물걸레질 등과 같이 노동에 관계되는 행위에도 사용한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의 시 중에 가혹한 세금 때문에 양물(남성의 성기)을 잘랐다는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가 있다. “시아버지 삼년상도 이미 지났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3대가 군적에 올라 있네 억울함을 하소연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장은 으름장 놓으며 소마저 끌고 갔다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로 방이 흥건하네 스스로 울부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부잣집들 일 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쌀 한 톨 베 한 조각 내다 바치는 일 없네.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의 갑질로 인한 을(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의 고통이 절절하다. 요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갑질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땅콩 회항 사건부터 매장 직원의 무릎을 꿇리는 백화점 손님, 자신의 운전기사를 폭행해 온 중견기업 회장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 진행된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90%가 갑질을 당했고, 60%가 갑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한다. 갑을의 관계는 다양하다. 왕과 신하,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 직원과 고객, 상급기관과 하급기관 사용자와 노동자, 학부모와 교사, 교수와 제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친구, 남친과 여친 등의 모든 인간관계가 해당된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특별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와 함께 ‘어쭙잖은 네가 감히 나에게 이렇게’라는 생각에서 갑질을 한다. 이는 자신의 우월감 이면에 깊숙이 간직된 열등감이 드러난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받으려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고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모든 종교의 바탕이고 민주사회의 상식이다.
          박재양 담산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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