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50 용암혜언(龍巖慧彦)

浮萍草 2016. 3. 20. 12:00
    왕이 인정한 ‘화엄종주’ (御賜不壞法雲華嚴宗主)
    太古東來漢碑屹 “태고가 동쪽으로 와서 한비로 높이 솟아 五傳淸虛有勳有才 다섯 번 청허에게 전하여 공훈과 재주가 있었고 爰及喚惺栗峯 환성과 율봉에 미쳐 더욱 밝아졌으니 師受敎統其道崔嵬 스님에게 받은 가르침 크고 그 길 높고 높다.” 도사에 모셔진 용암혜언(龍巖慧彦, 1783~1841) 선사 진영에 실린 풍은부원군(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의 영찬이다. 조만영은 순조 때 문신이며 그의 딸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오늘날 조대비로 널리 알려졌다. 조만영이 용암스님의 영찬을 짓게 된 연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811년에 순조가 병이 나자 생모인 가순궁(嘉順宮) 순빈 박씨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남쪽 봉(鳳)자가 들어가는 절에 도인에게 축원을 올리면 쾌차한다는 말을 듣고 봉접사(鳳接寺, 봉서사의 오자로 추정)의 용암스님에게 축원을 청해 왕의 병환을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을 증명하듯 용암스님 진영에는 임금이 하사한 ‘어사불괴법운화엄종주(御賜不壞法雲華嚴宗主)’가 영제와 더불어 부원군인 조만영의 찬문이 실려 있다. 조만영은 영찬에서 조사(祖師)들의 높은 공덕을 이어받은 용암스님을 찬탄했다. 찬문에서 언급했듯 스님은 태고보우와 청허휴정에서 이어진 환성지안의 후손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환성지안-호암체정-청봉거안(靑峰巨岸)-율봉청고(栗峰靑)의 법맥을 계승했다. 스님은 율봉스님에게 법통을 인정하는 돌부(斧, 무뎌진 손도끼)를 전해 받았고,스승의 허락을 받고 통도사 해인사 묘향산 조계산 지리산 금강산 오대산 삼각산 용문산 등 전국에서 가르침을 펼쳤으며, 말년에는 해남 대흥사에서 수행하다 금강산 마하연에서 입적했다. 스님이 교화를 펼친 사찰 가운데 통도사는 용암의 후손들이 번성한 곳이다. 통도사에 모셔진 용암스님의 진영은 1846년에 조성됐다. 진영 제작을 주도한 이들 가운데 포운윤경(布雲潤)은 용암스님이 상족(上足)으로 선암사 출신이면서 통도사에서 활동했다. 진영 제작은 호암체정의 후손인 응월선화(應月善和)스님이 맡았다. 용암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환성스님의 진영이 모셔진 통도사 극락영당(極樂影堂)에 스님의 진영을 모셔 환성문중에서 스님이 지닌 위상을 갖추고 예우를 다하고자 했다.
    Vol 3186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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