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49 함홍치능(涵弘致能)

浮萍草 2016. 3. 14. 11:25
    19세기 고운사 참스승
    自題曰 “스스로 말하기를 爾非我 我非爾 네가 내 아니고 내가 너 아니다. 爾若我乃何聲音笑談之寂然無聞 네가 나라면 소리내어 웃고 이야기하는데 조용히 듣지 못하고 我非爾亦何拂影形之七分相似 내가 너 아닌데 어찌 그림속의 모습이 닮았는가?슬프다 爾是一幅素面我是五蘊積陰身 너는 한 폭의 비단이요 나는 오온으로 된 몸이다 爾耶我耶俱非眞安쏔非眞中悟眞 너와 나 참된 모습 아니니 참 모습 아닌 가운데 참 모습 깨닫는다 돌!” 운사에 모셔진 함홍치능(涵弘致能, 1805~1878) 선사 진영에 적힌 스님의 자찬(自讚)이다. 함홍스님은 19세기 후반 고운사를 대표하는 강백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내전만이 아니라 외전에도 밝아 당대 사대부들과 시와 문장을 나누며 교류하였다. 입적 후 제자 야산명원(野山明遠) 등은 스님의 글을 모으고 당대 명사에게 서문을 받아 <함홍당집(涵弘堂集)>(1879)을 간행했다. 진영에 실린 자찬은 행장과 함께 유고집에 수록되어 있다. 함홍스님의 자찬은 불가(佛家) 특유의 역설적 화법으로 실존적 나와 나를 그린 진영 모두 참모습이 아니며 그 가운데서 진정한 참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함홍스님은 환성스님의 9세손으로 포월초민-영월응진-야운시성-모운대유(慕恩大有)-봉암(鳳巖)-운파(雲坡)-송암의탄(松庵義坦)의 법맥을 계승했다. 스승인 송암스님은 속가의 숙부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함홍스님을 맡아 양육했다. 송암스님은 함홍스님이 출가를 결심하자 삼장(三藏)에 능통하지 않으면 일심(一心)이 명료하지 않아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걱정해 유계(酉溪) 김공(金公) 에게 사서삼경과 제자백가 등을 배우기를 권하였다. 이 때의 배움은 함홍스님이 강백이자 문장가로 대성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후 18세에 구담전홍(九潭展鴻)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혼허지조(混虛智照)스님과 팔봉(八峯)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30세에 고운사로 돌아와 강원을 세웠다. 스님은 고운사에서 학인(學人)을 길러내는 한편 산내암자인 운수암(雲水庵)을 중창하고 불량답을 헌토하는 등 사찰을 위해 일생 공덕을 행하였다.
    Vol 3184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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