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45 인월지행(印月智幸)

浮萍草 2016. 2. 6. 15:43
    우주를 품은 마곡사 동량
    千株松下 천 그루의 솔밭 아래 兩行金文 두 줄의 부처님 말씀 手探月窟 손으로는 달을 어루만지고 足踏天根 발로는 하늘을 밟는다. 崔嵬氣宇 크고 높은 기개는 彷彿面目 진영의 본래 면목이라 風月無邊 아름다움은 끝없이 펼쳐지고 庭草交翠 정원의 풀은 싱그럽게 푸르다. 곡사에 모셔진 인월지행(印月智幸, 1831~1861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주성(注性, 19세기 후반 활동)스님의 영찬이다. 찬자인 주성스님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영찬에 인월스님의 문하(門下)로 소개하고 있다. 주성스님은 내외전에 밝았는지 이고(李, 772~841)와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이 나눈 게송 일부인 ‘천주송하량함경(千株松下兩函經)’과 고려말 이색(李穡, 1328~1396)의 취중가(醉中歌) ‘선생유수탐월굴(先生有手探月窟) 선생유족추천궐(先生有足趨天闕)’을 차용하고 주자의 염계선생화상찬(濂溪先生像贊)의 마지막 구절인 ‘풍월무변(風月無邊) 정초교취(庭草交翠)’를 옮겨 우주와 같이 큰 기운을 품었던 인월스님을 찬탄하는 글을 지었다. 인월스님은 서산휴정의 11세손으로 청암학종-제봉체규-금화묘화-홍계영일(洪溪永日)의 법맥을 계승했다. 18세기 후반 청암스님과 제봉스님은 대웅보전, 대광명전,심검당 등 마곡사의 전각을 중수하며 두각을 보였다. 19세기 중엽에는 두 분 스님에 이어 인월스님이 마곡사 불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831년 이층 대웅보전 중수에 도감(都監)을 맡았으며 1840년에는 산내암자인 은적암 중수에 소용되는 모든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인월스님이 입적하기 직전까지 가장 공을 들인 불사는 옹사인 금화스님과 스승인 홍계스님의 진영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1861년 봄, 마곡사 청련암 불상 개금과 불화 제작을 맡았던 화승 가운데 춘담봉은(春潭奉恩, 1853~1870 활동)을 청해 선사(先師)의 진영 제작을 의뢰했다. 진영 조성이 한창이던 중 불행히도 인월스님이 입적하자 모든 스님들은 동량(棟樑)이 꺾였다며 깊이 한탄했다. 같은 해 금파스님 진영을 완성하고 중앙에 모신 후 이듬 해 1862년 홍계스님과 영인스님의 진영을 제작해 그 옆에 모셔 마곡사를 위해 공덕을 쌓은 세 분 스님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다하였다.
    Vol 3175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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