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눈 내린 서산 부석사와 대마도에서 온 금동불

浮萍草 2016. 3. 2. 09:34
    눈 내리는 부석사는 천수만 검은돌을 바라본다
    주민들 섬기던 '검은여' 천수만 간척으로 뭍이 돼 도비산에는 영주 부석사와 전설이 같은 절 부석사 2012년 대마도에서 도난당한 불상 원래 있던 절 조선시대 왜구 대비해 군사훈련… 해미읍성도 축성 ㆍ검은돌, 검은여 돌만에 물이 밀려와도 바위들은 머리끝이 바다 위에 솟아 있었다. 바위는 검었다. 사람들은 '검은여'라고 불렀다. 뜬 돌이라고 하기도 했다. 한자로 부석(浮石)이라고도 했다. '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말한다. 망망한 바다에 돌이 쌓여 있으니 바다 이름도 쌓을 적(積)에 돌 돌(乭) 적돌만이었다. 천수만이라고도 불렀다. 바닷가 갈마리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떠 있는 돌무리를 숭배하며 풍어제를 지내곤 했다. 1984년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이 폐기된 유조선으로 방조제 마지막 물길을 막으면서 방조제 안쪽은 뭍이 되었다. 검은여도 뭍으로 올라왔다. 검은여는 서산간척지B지구 개펄에 비죽 솟은 돌더미가 되었다. 개펄 한가운데에 있어 제사를 올릴 수도 없었다. 주민 이정복이 현대건설에 청원을 올렸다. 분주히 기관들을 오간지 3년 만인 1989년 검은여 앞에 '검은여 부석(浮石)'이라고 새긴 입석이 섰다. 이후 지금까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사람들은 해마다 4월이면 검은여에 모여 풍어제를 올린다.
    만공 스님이 공부한 부석사 검은여를 바라보는 산에는 절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이 절과 바다 위 검은여가 지맥(地脈)이 연결돼 있다고 믿었다. 산 이름은 도비산(島飛山)이고 절 이름은 부석사(浮石寺)다. 섬이 날아와 산이 되었다는 산 이름도 뜬 돌이 만든 절이라는 절집 이름도 유별하다.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와 이름도 창건 설화도 똑같다. '…당나라로 유학 간 의상대사가 자기를 흠모하는 여자를 뿌리치고 귀국해 절을 지으려니 창건을 반대하는 무리가 훼방을 하자 공중에서 바위가 날아와 무리들을 물리치고 무사히 절을 지었고 그제야 돌이 내려앉더라…'는 이야기. 서산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서산에 인접한 당진(唐津)이 당나라로 가는 포구였으니 서산 부석사 창건설화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조선 말 숭유억불 정책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불교계에 경허와 경허의 제자 만공 두 승려가 나타났다. 만공은 이 부석사에 토굴을 짓고 공부를 했다. 대한민국 불교는 이 걸출한 두 스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융성하지 못했다.
    도비산 부석사에 눈이 내렸다. 새 소리도, 인적도 모두 끊기고 천지사방이 온통 찬란하게 빛났다. /박종인 기자

    절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가파르지도 평탄하지도 않은 걷기 딱 좋은 산길 중턱에 절이 있다. 근세에 지은 누각과 찻집,그리고 세월이 보이는 절집들, 간척지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조망 그리고 산신각과 만공 토굴로 오르는 오솔길까지'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욕심부리지 않고 산에 묻어 사는 아담한 절이다. '템플스테이'도 이 부석사에서 시작됐다. ㆍ관세음보살 좌상 이야기
    대마도에서 도난당한 관세음보살상
    2012년 10월 2일 오후 8시 일본 대마도 서쪽 고즈나(小網) 마을에 있는 작은 절 간논지(觀音寺)에 도둑이 들었다. 3인조 도둑은 열쇠보관함에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서 키 50cm짜리 불상 하나를 집어 들고는 다시 문을 잠그고 사라졌다. 해가 바뀌고 2013년 1월 절도단이 모두 붙잡혔다. 불상도 발견됐다. 절도범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불상은 마산에 있는 자금책 냉동창고에서 발견됐다. 불상은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봉안된 고려시대 금동 관음보살좌상이었다. 일본 나가사키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난리가 났다. '빼앗긴 보물이 돌아왔으니 절대 반환 불가'였고,'훔쳐간 장물이니 반드시 반환'이었다. '장물이니 일단 돌려주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축구 경기를 해도 반드시 '타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두 나라이니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결국 3년 전 부석사가 제기한 반환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지금 불상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 에 보관돼 있다. ㆍ14세기 서산을 휩쓴 왜구
    왜구(倭寇).'14~16세기 한반도와 중국 연안과 해상에서 약탈과 납치,살인과 방화를 자행했던 일본 해적단'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지만,그 300년 동안처럼 수시로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해적행위를 한 역사는 없었다. 왜구들은 수도 개경 인근까지 쳐들어와 백성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고려가 망해갈 무렵인 15세기에는 온 나라에 왜구가 활개를 쳤다.
    고려사 최영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적들이 동성현에 이르자,'아무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참으로 낙토(樂土)로다'라고 떠들었다." 동성현은 지금 경기도 김포 땅이다.
    천수만 들판에 서 있는 검은 바위 무리 ‘검은여’.

    그 당시 서산은 3면이 바다였다. 서산은 뭍으로 오른 왜구들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훗날 조선이 개국하고 태종은 아들 세종과 함께 도비산에서 군사훈련을 했고 성종은 1491년 서해안 방어를 위해 인근 해미에 읍성을 세웠다. 젊은 장교 이순신이 이 해미읍성에서 근무를 하기도 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서산 지역은 모두 7차례 왜구 침입을 받았다. 중원대학교 초빙교수인 전 튀니지대사 김경임 "이때 부석사 관세음보살상을 비롯한 서산 일대 사찰 불상들이 약탈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ㆍ'무쿠리 고쿠리 온다'
    대마도를 비롯한 규슈지방에는'무쿠리 고쿠리'라는 말이 있다.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한국말과 비슷한 뜻이다. 대마도 옆 이키섬에는 무쿠리 고쿠리라는 인형도 있다. 무쿠리는 몽고, 고쿠리는 고려사람을 뜻한다. 김경임이 말했다. "13세기 여몽연합군이 왜구를 조직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이라는 책에서 김경임은 이렇게 주장한다. "1274년 10월 6일 몽고군 2만5000명,고려군 8000명이 전함 900척을 타고 대마도에 도착했다. 8일 동안 마을들을 약탈하고 방화하고 살상하고 은광을 파괴했다. 포로 수백 명을 잡아갔는데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 밧줄로 꿰어 데려갔다." 김경임은 "그 이후 본토에서도 버림받은 대마도 사람들이 주저 없이 왜구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라고 했다.
    해미읍성.
    불상이 있었던 간논사는 1527년 여몽연합군과 맞섰던 고노 미치아리의 후손 고노 모리치카가 세웠다. 일본 규슈대 교수 기쿠다케 준이치(菊竹淳一)는 1978년 '대마 미술'이라는 학술논총에서"고노씨가 창립한 간논지에 1330년 고려불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왜구에 의한 일방적 청구가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고 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검찰에 제출한 조사보고서도"왜구에 의해 약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이상근이 말했다. "구입 또는 취득 경로가 정당해도 그 전 과정이 불법임이 확인되면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게 국제 관례다. 비록 절도범이 훔쳐왔지만 그 이전 모든 과정이 불법이니 우리가 받는 게 옳다." 대검 마약부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은퇴한 유금와당박물관 관장 유창종은 이렇게 말했다. "안 돌려주는 것은 감정적 하수에 불과하다. 좀도둑이 훔쳐온 불상을 부석사에 모셔놓는 것은 떳떳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협상을 통해 일단 반환하고 일본으로부터 귀환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대마도에 있는 한국 불상은 190여 점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불에 타거나 훼손돼 있다. 정상적으로 건너간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이 말했다. "내가 만들지도 않았고 내가 빼앗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슨 인연인지 내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 그 인연만으로도 불상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ㆍ서산을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섬이 날아와 솟은 산, 도비산 부석사에 눈이 내렸다. 아랫마을 진눈깨비는 일주문부터 폭설로 변했다. 주지 원우 스님이 말했다. "이렇게 예쁠 수가!"일희일비를 삼가고 구도에 침잠해야 할 성직자 입에서 터진 감탄사이니,뜬금없이 설경을 만난 등산객들은 오죽 흥분했으랴. 천수만에 뜬 돌, 검은여는 이제 뭍에서 흰 눈을 맞는다. 뜬 돌이 세운 절 부석사도 온통 희디 희다. 부석사 찻집에 앉아 궁리를 해본다. 관세음보살이 머물 곳은 어디인가. 천지사방이 분별없이 찬란하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ㆍ서산 여행수첩
    볼거리
    1. 도비산과 부석사:
    절 입구까지 시멘트포장길이 있다. 주차장도 넓다. 등산로도 평탄하다. 만공이 수행한 만공토굴까지 길도 걷기 좋다. 맑은 날에는 서산 간척지까지 조망도 좋다. 템플스테이도 한다. www.busuksa.com 2. 해미읍성 : 15세기 성곽을 세운 읍성. 1578년에 이순신이 군관으로 열 달 동안 근무했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도 수백명이 이곳 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당하고 처형됐다. 하도 처형할 사람이 많으니까 개울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기도 했고 돌다리에 패대기쳐서 죽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프란시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하기도 했다. 3. 천주교 상흥리공소: 박해를 피해 천주교도들이 피난 와 집단으로 산 곳. 1903년에 본당이 건축됐다. 지금 남은 건물은 1909년에 사제관으로 세운 건물이다. 한식 목구조로 팔작지붕을 얹은 특이한 건축양식이다. 4. 개심사 : '조경'으로 도를 닦음이 분명한,정원이 아름다운 절. 절집들도 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한 기둥을 썼다. 절로 가는 오솔길이 아름답다. 맛집
    서산불고기 :
    서산 3대 맛집이라 불리는 불고기 식당. 서산마늘, 생강, 양파로 간을 한 소고기, 돼지고기 불고기를 숯불에 구워 낸다. 소고기는 1만3000원, 돼지고기 1만원. 2인분 이상. 고등어백반(9000원)도 있다. (041)663-6659, 서산시 동문동 189-10 기타 숙박 및 서산 여행정보 www.seosantour.net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