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두루미 날아오는 철원과 컨테이너 스님 도연

浮萍草 2016. 2. 10. 15:00
    얼어붙은 철원 들판에 두루미 가족 훨훨 난다
    철원 생태 살아나면서 두루미 5000여 마리 날아와 도로 옆 논과 밭에 귀한 새들이 무심히 걸어다니고 새 스님 도연 "새들에게서 자비와 배려를 배웠다" 농부 백종한 "새들도 먹이 없는 북쪽으로는 날지 않더라" 원도 철원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포천 지장산 기슭에 암자가 하나 있다. 이름은 도연암이다. 법도 도(度)에 못 연(淵),도연암이다. 암자에는 같은 법명을 가진 스님 도연이 산다. 밥 짓는 공양보살도 없고 처사도 없이 혼자 산다. 속세 나이 올해 예순셋이다. 도연에게는 별명이 두 개 있다. 먹고 자고 예불을 올리는 법당과 요사채를 모두 컨테이너로 지었으니'컨테이너 스님'이요, 진박새며 쇠박새며 동고비,곤줄박이에 딱따구리까지 겁 많은 산새들이 스님 머리와 안경다리에 제멋대로 내려앉아 인사를 하고 가니'황새 스님'이다. 담장도,일주문도,천왕문도 없는 허허(虛虛)한 절에서 그가 말했다. "새들은 손이 없으니 무소유(無所有)요 날개가 있어 훨훨 나니 자유(自由)라. 새들이 하는 말씀이 바로 경전(經典)이더라." ㆍ평화의 땅 철원
    도연이 사는 도연암에서 5분만 북상하면 철원 땅이다. 전쟁 전 북한 땅이었던 철원은 그 짧은 기간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을 경험했다. 전쟁 때는 전사(戰史)에 또렷이 기록된 숱한 전투들이 철원평야에서 벌어졌다. 폭격으로 골격만 남은 노동당사는 그 상징이다. 생태학 관점에서는 평화의 땅이기도 하다. 민통선 안과 밖으로 인간 출입이 엄중하게 통제된 동안 자연은 그 전흔을 덮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인간 족적이 끊기니 숲과 벌판이 부활했고 건강을 되찾은 그 땅에 크고 작은 새들이 찾아왔다. 도연이 말했다. "생태계가 회복되면 새들이 가장 먼저 안다"고.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철원 동송읍 양지리 주민 백종한은 농부이며 동시에 생태운동가다. 홍천이 고향인 백종한은 철원 6사단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철원에 정착해 농부가 되었다. 그때 두루미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한 해에 두세 마리씩 두루미를 봤다. 몸통 하얗고 정수리가 빨간 단정학(丹頂鶴)도 보았고 몸통이 잿빛인 재두루미도 보았다. 한 번만 봐도 무병장수한다는 귀한 새를 많이 보았다."
    강원도 철원 한탄강 변에 두루미들이 날아간다. 숲은 옷을 벗었는데, 새하얀 단정학, 잿빛 재두루미는 먹이를 찾아 새끼들을 데리고 훨훨 난다.
    /박종인 기자
    봄부터 가을까지 새들은 농부들에게 불쾌한 존재다. 수확하고 남은 낟알을 먹고 사는 두루미 같은 겨울 철새는 그렇지 않았다. 철원을 찾는 두루미는 많게는 한 해에 100마리가 넘었다. 여느 농부들처럼 먹고사는 데 바빠 들판에서 청년기가 갔다. 1993년부터 백종한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겨울에 낟알을 들판에 뿌렸다. '청치'라고 덜 여물어 푸른 빛깔을 띤 쌀알은 사료업자들에게 팔면 돈이 되는데 이 청치를 그냥 들판에 뿌렸다. 새들이 좋아했다.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일본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철원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백종한은 "철원 자체가 새들에게 이로워 월동지로 선택됐겠지만 사람들 노력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세상이 먹고살 만해지고 새 보러 다니는 생태여행이 돈이 되는 시대가 왔다. 지자체가 그냥 놔둘 리가 없다. 2000년 농부들이 사료업자들에게 평당 120원씩에 팔던 볏짚을 철원군이 99원에 수매해 논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1000평에서 거둔 볏짚에서 두루미 80마리가 하루 먹을 청치가 나왔다. 볏짚을 잘게 썰어 논에 뿌리니 그 속에 숨어 있는 청치가 새들을 불러들였다. 2015년 가을 그렇게 볏짚을 흩어놓은 논 30만 평에 자그마치 두루미 5000마리가 찾아왔다. 그래서 철원 토박이가 된 홍천 사람 백종한은 뿌듯하다. "쓸데없는 짓 한다며 욕도 많이 먹었다 보호구역 생기면 농사 못 짓는다고 비난도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새들 쫓는 농부 못 봤고 새 죽이는 농부 못 봤다. 다들 새들, 두루미들 귀히 여기고 아낀다." 백종한은 2003년 두루미보호협회철원지회를 만들어 역사를 잇고 있다. 역사는 작은 손길이 창조하는 것이다. ㆍ새들이 준 깨우침, 자비와 배려
    컨테이너에 살며 새들을 보살피는 도연 스님
    도연은 중학교 때 미술 시간이 제일 좋았다. 그림을 잘 그렸다. 직장을 다니다 문득 딴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경쟁이니,이를 어이할꼬. 가족들 반대가 심했지만 도연은 산문(山門)을 택했다. 열네 살 때 큰형님이 월남전 참전했다가 사온 야시카 카메라도 산문으로 들고 갔다. 자유를 원해 출가했는데, 절에서도 규율이 싫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다 지장산에 컨테이너를 올리고 암자를 지었다. 다음 날 자전거를 몰고 철원 들판으로 가니 기러기 떼 25만 마리에 두루미 수백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얽매여 있는데 새들은 자유였다. 법문이 따로 있나, 저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면 되지." 그리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 새를 찍으려니 새를 공부했다. 새를 공부하려니 식물을 공부해야 했고 곤충을 공부해야 했고 애벌레를 공부해야 했다. 경전보다 더 많은 생태학 책을 읽었고 그만큼 많은 사진 서적을 탐독했으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촬영 장비를 사들였다. 어느 틈에 속세에서는 도연을 스님보다는 생태사진가로 알게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내가 정말 중(僧)이 맞나? 지식을 논하고 장비를 논하고 두루미 사진 찍어서 예술을 논하는,이 내가 진짜 내가 찾던 그 존재인가?' 섬뜩한 깨달음에 2006년 도연은 비싼 장비들을 다 처분해버렸다. 촬영해 놓은 슬라이드필름 2만 컷을 버리고 남은 필름은 불태웠다. 지금은 오로지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2005년 일본에서 인공번식에 성공해 자연 속으로 방사한 황새 'J0051'과 'J0092'가 한국으로 왔을 때, 도연은 봉순이와 제동이라 이름 붙인 황새를 따라 팔도를 유랑했다. 두 황새 이동경로는 국제학회에 꼬박꼬박 보고됐다. 2년 전 도연은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에서 열린 국제황새학회에 참관했다. 두 번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도 이런 황새 보호운동가가 있다'는 소개말에 놀랐고 VIP석에 앉은 사람들이 학계나 정계 유지가 아니라 거기 어린이들이라 또 놀랐다." 한국이 얼마나 조류 보호 후진국 취급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 사회가 현재보다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곤줄박이. 사람을 별로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도연은 그림동화책을 썼다. '할머니와 황새'. 일본에서 제주도로 온 황새 제동이와 제주도 할머니에 얽힌 우화다. '새가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연이 사는 도연암은 새들의 낙원이다. 겁이라곤 애시당초 유전자에 없어 뵈는 새들이 사람들 주변에서 짹짹거린다. 도연이 나타나면 이번엔 먹을 거 뭐 갖고 왔수 하며 스님 주변으로 집결한다. 경전 대신에 도연이 귀를 기울이는 새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도연이 말했다. "월동하며 새끼를 보호하는 나비도 있다. 콩새와 되새라는 토종 새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낙인찍힌 외래종 단풍잎돼지풀 씨앗을 제일 좋아한다. 이거 없이는 겨울을 나지 못한다. 황소개구리는 황새에게 둘도 없는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따로 없다. 자비와 배려와 관용이 불교 가르침이라면 나는 새들한테서 다 배웠다."
    두루미가 사는 철원 들판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 산기슭에 기이한 방식으로 도를 깨우친 승려가 산다. ㆍ두루미 전망대와 도연과 백종한
    백종한이 사는 양지리와 이길리 사이 한탄강 여울은 대표적인 철새 월동지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출입이 금지된 토교저수지 옆이다. 백종한이 활동하는 두루미보호협회 철원지회는 여울 한쪽 둑 갈대와 잡목을 베어내고 전망대를 만들었다. 위치는 귀한 새를 보려고 몰려드는 인간들 호기심과 사람들 손때를 피하려는 새들 두려움 한가운데다. 겨울에는 여울 모래밭에 먹이를 뿌린다. 도연이 말했다. "철원 두루미는 낟알을 먹고 산다. 연천 두루미는 연천 특산 율무를 주워 먹는다. 강화도 두루미는 갯벌에서 갯지렁이와 조개를 먹고 산다. 해마다 두루미 한 가족이 내려앉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거기에 먹이를 줘야지 지금처럼 한곳에 집중하면 결국 영토 싸움에 전염병까지 감염될 우려가 있다." 백종한이 말했다. "새들을 보호하면서 사람들을 맞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또 잡목 속에 숨은 삵과 들고양이들이 두루미를 숱하게 공격해, 갈대숲을 베지 않으면 두루미들이 위험했다."
    철원 평야에서 낟알을 찾는 재두루미 가족. 이 계절 철원에서 흔한 풍경이다.

    삶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새를 바라보는 눈도 하나가 아니었고 두루미에 대한 사랑법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겨울날, 철원 두루미 사랑을 권한다. 굳이 전망대가 아니어도 좋다. 철원 북쪽을 가로지르는 464번 지방도 주변 얼어붙은 논밭을 보면 마치 아프리카 초원 사파리처럼 낟알을 줍는 우아한 두루미 가족을 목격할 수 있다. 폐농가와 창고, 축사 담장 아래에서 불로불사 십장생을 무심하게 친견하다니 이런 가당치 않게 평범한 낙원이 어디 또 있다는 말인가. 농부 백종한의 목격담으로 글을 맺는다. "이른 아침, 민통선 속으로 들어가면 잠에서 깬 새들이 날아오른다. 단언컨대, 단 한 마리도 북쪽으로 가지 않는다. 먹을 게 없는 걸 다 아는 게지." 북쪽에서 날아온 미사일은 남쪽 바다로 사라졌다. 북쪽에서 날아온 두루미는 철원에서 평화롭게 낟알을 줍는다. ㆍ철원 여행수첩
    〈두루미 탐조 정보〉 1.도연암 : 포천에서 철원으로 가는 87번국도로 포천 북쪽 끝에 있다. 지장산 기슭. 홈페이지는 www.hellonetizen.com 2.두루미전망대 : 두루미보호협회 철원지회 doorumi.or.kr에서 관리. 원래는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 1만원은 먹이 구입과 마을 부녀회비로 사용. 지금은 현장에서도 입장료를 내면 가능하지만 올해 안으로 현장 입장은 금할 예정이다. 3.두루미 탐조 루트 : 철원 북쪽 464번 지방도는 두루미가 월동하는 논과 밭을 지나간다. 굳이 망원경이 없어도 두루미를 볼 수 있는 '사파리' 루트다. 단 되도록이면 차에서 내리지 않고 큰 소리도 내지 말 것. 4.철새 보는 집 : 농부이자 조류 보호운동가 백종한이 운영하는 민박집. 전망대 바로 옆이다.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277-11, (033)452-3145 5.민통선 안쪽 탐조 여행: 북한 미사일 발사로 당분간 금지. 6.기타 두루미 탐조 장소 : 경기도 연천 임진강 변 빙애여울과 장군여울도 있다. 태풍전망대 가는 길이다. 군남댐 건설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이 또한 북한 미사일 사태로 당분간 출입 금지. 〈맛집〉 포천 이동갈비 우목정 : 철원 전망대에서 30분 남하하면 나오는 이동갈비 식당. 내비게이션 주소는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283. 양념갈비 2만8000원, 생갈비 3만원, 돼지갈비 1만2000원. (031)532-5167. 우목정 주변에 다른 갈비집이 밀집해 있다. 〈온천〉 일동제일유황온천 : 우목정에서 또 남하해 20분. 유황성분이 피로를 풀어준다. 겨울 탐조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탐조 여행 마지막 코스. 오후 7시 20분까지 입장. 성인 7000원.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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