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명인들 건강장수비결

94 농암 이현보 (6)

浮萍草 2016. 2. 22. 13:41
    67세의 농암이 때때옷 입고 춤춘 사연

    경로 잔치에서 때때옷 입고 춤춘 사또. /정지천
    암 집안의 장수비결이 여러가지인데,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일곱번째는 ‘효심(孝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모님이 계신 안동 주변의 지방관 근무를 자원했던 것만 봐도 효심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농암의 시호가 ‘효절공(孝節公)’입니다. 왕이 내리는 시호는 한자 몇 글자로 그 인물의 됨됨이를 선명하게 각인해 놓는데,조선을 통틀어 효절이란 시호를 얻은 이는 농암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ㆍ농암의 효도는 어느 정도였나?
    농암은 53세 때(1519년) 안동부사로 지내며 중양절(重陽節·9월 9일)을 맞아 부모와 안동의 노인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마련했습니다.
    80세가 넘은 수백 명의 노인들이 남녀 귀천 구별 없이 초청되었는데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이라 불렀습니다. 화산(花山)은 안동의 옛 이름이죠. 이 때 농암은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안동 지역에서는 행정과 사법, 치안을 책임지는 왕 같은 분이 많은 사람 앞에서 색동옷을 입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죠. 옛날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70세의 나이에 부모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고 합니다. 늙은 자식의 재롱에 부모가 나이를 잊고 즐거워하며 오래도록 정정하시기를 바란 것이죠. 아무리 양로잔치이지만 점잖고 근엄하신 고을 사또께서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데 그것만 봐도 효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겁니다. 때때옷을 입은 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나 되었습니다. ㆍ장수연에서 67세의 나이로 때때옷 입고 춤을 춘 농암
    부친의 나이가 94세였던 1533년에 농암은 고을의 노인들을 초대해서 장수연을 베풀었습니다. 잔치에는 고을 노인 9인이 참석했는데,현감 이흠(縣監 李欽 : 94세·부친),직장 이균(直長 李鈞 : 92세),사직 김숭의(司直 金崇義 : 92세),동지 권순익(同知 權受益 : 82세·외숙부),사정 김집(司正 金緝 : 82세),생원 김효로(生員 金孝盧 : 80세),만호 금치소(萬戶 琴致韶 : 74세),훈도 김완(訓導 金琬 : 74세), 봉사 우경현(奉事 禹磬賢, 69세) 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의 연세를 모두 합하면 740세이니, 평균 82.2세이죠. 지금으로부터 480년 전이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고을 노인 초청 장수연(67세, 홍문관 부제학), 부친(94세), 외숙부(82세) 포함 9명 평균 82.2세. /정지천

    그 자리에서도 농암은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춰 부친을 비롯한 노인들을 즐겁게 해 드렸습니다. 당시 농암은 나이가 67세나 된 데다 홍문관 부제학(정3품 당상관 벼슬)에 있는 고관대작이었으니, 신분과 체통을 중시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때의 모습이 글과 그림으로 남겨져 있는데 ‘희디 흰 머리로 소매와 옷자락을 날리며 어떤 분은 눕고 어떤 분은 앉아 마음대로 편함을 따랐으니 진정 기이한 모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색동옷 입고 술잔 앞에 춤추는 사람 괴이하다 하지 마라’고 시로 읊었다고 합니다. 잔치를 열었던 장소가 ‘애일당’인데,농암이 46세 때 낙동강의 지류인 분강(汾江) 기슭의 귀먹바위 주변에 부모를 위해 지은 별당입니다.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草 浮
    印 萍
    효도하고 기부 많이하면 장수할 수 있는 이유
    
    ㆍ‘애일당’은 어떤 뜻인가?
    애일당 구경첩(왼쪽), 애일당 그림. /정지천
    일당(愛日堂)은 부모님이 늙어 감을 아쉬워하며 살아계신 하루하루를 사랑한다, 하루하루 날을 아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만 봐도 농암의 깊은 효심을 잘 알 수 있지요. 농암이 명절마다 이 정자에서 부모님과 고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었다는 것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것이 ‘애일당 구경첩(具慶帖)’인데 보물 1202호 입니다. 그리고 잔치 이름은 애일당에 노인 아홉이 모였다 해서 ‘애일당 구로회(愛日堂 九老會)’죠. 잔치는 오래도록 전통으로 내려왔는데,그것도 이 집안이 대대로 장수 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선조어필. /정지천
    ㆍ애일당 구로회는 언제까지 이어져 내려왔나?
    이후 계속 이어져 1547년에는 농암 자신도 들어갔고 1569년 봄에는 퇴계 선생이 초청받았으나 자신의 나이가 69세여서 70세 이상 모이는 자리에 한 살 모자랄 뿐 아니라 이미 9인이 모두 채워졌고 또 사형(舍兄)인 이징(李澄)이 참석하였으므로 갈 수 없다고 간곡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퇴계는 그 해 가을부터 참여했습니다. 이후 잔치부터는 참석인원이 조금씩 늘어나서‘속구로회(續九老會)’‘백발회(白髮會)’등의 이름으로 이어졌는데 1902년에는 37명이 모였고 참석자들은 차운(次韻)을 통해 시를 남겼습니다. ㆍ효도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이유
    농암을 비롯해서 이 집안 후손들이 장수한 것으로 확실하게 증명이 된 것 아닌가요? 효도하는 마음은 건강하게 해 줍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선비들이면 누구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글귀를 알 것입니다. ‘몸과 머리카락,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거나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말이죠. 공자의 효경(孝經)에 나오는 것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옵니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생활한다면 장수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편, 남을 돕는 마음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기부하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편안해져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죠. 이 집안은 기부도 많이 했기에 사랑채에는 선조 임금이 직접 써서 내린 ‘적선(積善)’이란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