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43 진계신서(晋溪伸瑞)

浮萍草 2016. 1. 23. 20:36
    말세 다시 모시고픈 대종장
                淵乎禪明於敎信曰大宗匠也 繼注聖開事學久而無煩惱障也 謂之末葉重來化身亦固無讓也 선에 깊고 교에 밝은 진실한 대종장으로 주성을 이어 강학을 오래도록 열었어도 번뇌의 장애가 없으시니 말세에 거듭 화신으로 오실 것을 청하오니 진실로 사양하지 마소서다.
    문사에 모셔진 진계신서(晋溪伸瑞, 18세기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응허의진(應虛意珍,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스님의 영찬이다. 찬자인 응허스님은 1901년에 용담경천(龍潭敬天 1824~1907)스님의 주도로 진행된 하동 쌍계사 대웅전,화엄전,나한전 등 전각 단청 불사에 기문을 지은 것으로 보아 경상도에서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스님으로 생각된다. 스님은 운문사에서 진영을 새로 제작하자 진계스님 진영과 도봉스님 진영에 영찬을 남겼는데,이중 도봉스님 영찬에 자신을 가야산인(伽倻山人)이라 소개하고 있어 가야산 해인사 스님으로 추정된다. 진영의 주인공 진계스님 또한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진계스님은 설송연초(雪松演初, 1676~1750)의 수법제자로, 1750년에 운문사에서 설송스님의 승탑과 탑비가 세워질 때 30명의 수법제자 중 한명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수법제자 가운데 진영과 승탑이 전하는 분은 진계스님을 비롯해 퇴암자여(退菴自如),응암희유(凝庵希有), 태허남붕(太虛南鵬) 뿐이다. 응암스님은 통도사에 정착하고 태허스님은 표충사를 건립하여 설송문중의 영향력을 경상도 일대로 확장했다면 진계스님은 운문사에서 명암스님에서 설송스님 으로 이어진 문중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이를 반영하듯 진계스님이 입적하자 제자 담윤(淡玧),우간(遇間), 성활(性) 등은 운문사에 스님의 승탑과 탑비가 세우고 이에 맞춰 진영도 사중에 봉안했다. 20세기 전반 운문사에서는 조영당(祖影堂)에 모셔진 진영 가운데 설송스님과 진계스님 그리고 정암효원(靜菴孝源) 스님의 진영을 새로 제작했다. 조성 당시에 상황을 알 수 없으나 진계스님은 스승인 설송스님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한 해담치익(1862~1942)스님에게 설송스님의 찬문을 맡기고 응허스님에게는 진계스님의 영찬을 의뢰해 원래 진영에 없던 찬문을 기록했다. 행장을 자세히 전하는 설송스님과 다르게 진계스님의 행보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이에 응허스님은 진계스님 탑비와 진영에 오롯이 남아있는 ‘宗正(종정)’, ‘兩宗正事(양종정사)’에 착안하여 선교(禪敎) 양종을 아우는 대종장인 진계스님의 경지를 드러내는 찬문을 남겼다.
    Vol 3171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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