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41 한송가평(漢松佳坪)

浮萍草 2016. 1. 9. 10:35
    어느 채색이 성덕에 미치겠는가
            畵鳳能及其廉乎 羽而己 畵人能及其心乎 貌而己 此漢松和尙之影 能及其聲德乎 架彩而己 愚之讚語又곂 旣和尙生斯吉 以普甘露法雨 於無限人天之化乎 難天舌斯拙而己 “화봉이 그의 청렴함에 미칠까? 깃털일 뿐이고, 화인이 그의 마음에 미칠까? 모양일 뿐이다. 한송 화상의 진영이 성덕에 미치겠는가? 채색일 뿐이다. 찬을 짓는 것도 어리석은 것으로 화상은 태어 날 때부터 훌륭했다. 감로의 법우로 두루 적시고 한없이 인간과 천상을 교화하였다. 하늘을 알지 못한 필설은 졸작일 뿐이다.”
    정사 영산암에 모셔진 한송가평(漢松佳坪,19세기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영찬이다. 찬자의 이름이 없어 누가 찬문을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진영이 스님의 참모습에 미치지 못하듯 스님의 수승(殊勝)함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어리석다 할 정도로 겸손한 마음이 영찬에 담겨 있어 제자가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송스님은 환성지안의 8세손이자 포월초민(抱月楚旻)의 7세손이다. 17세기 말~18세기 초 경상북도에 정착한 포월초민과 그의 후손은 안동,포항,문경,상주 등지에서 번성했다. 특히 봉정사는 포월문중의 세거사찰이었다. 한송스님은 포월초민-영월응진(影月應眞)-야운시성(野雲時聖)-완화혼각(翫華混쳈)-벽파해운(碧波海雲)-동파채련(東坡採蓮)-영봉유유(永峰有裕)의 법맥을 계승 했다. 야운스님 이후 후손들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한송스님 또한 진영을 제외하고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한송스님의 진영 조성은 상좌 환곡대연(幻谷大衍)을 위시해 손상좌(孫上佐), 증손상좌(曾孫上佐) 등이 앞장서 진행되었으며 직계는 아니지만 같은 포월문중 출신 화승(畵僧) 한규(翰奎, 1881~1891 활동)스님이 제작을 맡아 1886년에 완성됐다. 한송스님의 진영 조성은 봉정사를 기반으로 한 포월문중에게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불사였다. 한송스님 진영이 모셔진 후 제자 환곡대연(幻谷大衍),구성긍섭(九成兢燮,1929년 작) 및 손상좌 영원해원(影隱海原) 등의 진영이 차례로 봉정사 영산암에 봉안됐다. 1760년대 포월스님 3세손인 월암지한(月岩旨閑 1753~1769 활동)스님이 서산,사명,환성,포월,영월,설봉스님의 진영을 봉정사 영산암에 모셔 문중의 위상을 세웠듯 120년이 지난 후 한송스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진영을 영산암에 봉안함으로써 포월문중의 역사성과 정통성은 20세기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Vol 3167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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