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9 화운(華雲)

浮萍草 2015. 12. 19. 12:32
    ‘무상원각’ 좌복 남기다
    水需影子 月華傳神 물 속 그림자는 달빛으로 전하니 신비롭고 以心觀心 一諦眞眞 마음으로 마음을 관하니 일체가 진실이라 寂然守吾 夕無幻塵 삼매에 든 나는 아무런 망상이 없다. 無上뉫覺 不二竗緣 위없는 원각(圓覺)은 둘이 아닌 미묘한 인연 于嗟茶毗 맠其蒲團 아~ 다비해 마치니 좌복이 허전하다. 암사에 모셔진 화운(華雲, 19세기 전반 활동)선사 진영에 실린 이인설(李寅卨, 1862~1881 활동)의 영찬이다. 화운스님의 진영에는 법호만 적혀 있어 법명은 알 수 없으나 <청암사 중수기(靑巖寺重修記)>(1854년)에 포봉(苞峰)스님의 문도로 기록되어 있다. 포봉스님 역시 법명은 알 수 없으나 청암사에 진영이 전하고 있으며 중수기에 회암정혜(晦庵定慧, 1685~1741)의 5세손이라 소개했다. 18세기 회암스님이 청암사에 주석하고 용암채정 등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청암사는 자연스레 회암문중의 세거사찰(世居寺刹)이 되었다. 18세기 말 화재로 청암사가 소실되자 많은 스님들이 나서 사세를 회복하고자 했다. 회암스님의 6세손인 화운스님 또한 퇴락한 청암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스승 포봉스님의 뜻을 받들어 청암사를 중수하는데 참여했다. <청암사사적기(靑巖寺事蹟碑)>(1914년)에는 포봉스님과 화운스님이 영각을 중수하고 요사의 기와불사를 행하였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화운스님은 19세기 전반에 일어난 청암사 중창불사를 하면서 선사(先師)를 기리는 영각을 중수하여 회암문중의 위상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찬문을 지은 이인설은 고종연간에 성균관 대사성,이조참판,한성부 판윤, 의정부 좌참찬과 우참찬 등을 역임했던 문신이다. 이인설이 화운스님을 비롯해허정(虛靜),오봉(吾峰),영송(影松) 등 여러 스님들의 진영에 찬문을 남겼다. 이인설은 철종 연간에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내면서 청암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이후 친분이 깊었던 이원조(李源祚, 1792~1871)와의 교류를 통해 청암사 진영에 영찬을 짓는 인연까지 더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원조는 성산 한개마을 출신으로 이인설과 마찬가지로 청암사의 용암채정(龍巖彩晴)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의 진영에 찬문을 남겼다. 다만 화운스님과의 직접 인연이 있었던지 영찬에 스님이 이룬 무상원각(無上圓覺)을 칭송하는 한편 입적 후 남겨진 빈 좌복에 스님을 그리는 안타까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 Vol 3163 ☜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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