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8 두암서운

浮萍草 2015. 12. 12. 10:16
     
    바른 마음가짐이 내 평생 일 
    自詠 스스로 읊다 直心 在我平生事 바른 마음가짐을 내 평생의 일로 하였으나 誰識 누가 알겠는가? 精松老古嶽 맑은 소나무가 옛 산에서 늙어가는 것을.
    룡사에 모셔진 두암서운(杜巖瑞芸, 1858~1886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자찬(自讚)이다. 스님은 진영을 바라보면서 평생 바른 마음가짐에 진력한 자신이 맑은 기운을 품은 소나무와 같다는 글을 남겼다. 수행자로서 반듯하게 살았노라 자부할 정도로 두암스님의 삶은 정갈했다. 이에 대해 <괄허집>의 ‘괄허대화상행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두암스님은 효를 행하고 계율을 단속하는 일에 있어서 어버이 섬기듯 스승을 섬겼고 구슬을 보호하듯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총림에 이름이 높았다 (杜巖有孝行戒檢事師如事親護身如護珠有名於叢林).”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99)의 유고집인 이 책은 스님이 입적한 후 90여년이 지난 1888년에 간행됐다. 비록 간행 시기는 늦어졌지만 후손들은 괄허스님의 행장에 완송척전(玩松陟銓)-정봉경현(靜峰景賢)-용계우홍(龍溪宇弘)-두암서운-경운이지(景雲以祉) 등 후손의 짤막한 행장을 수록해 번성했던 문중의 사세를 후대에 길이 남도록 했다. 두암스님은 괄허스님의 5세손으로 괄허스님이 입적하고 괄허문중이 대대로 세거(世居)했던 김룡사 양진암에 주석하며 김룡사와 도리사에서 활동했다. 특히 김룡사에는 30여년에 걸쳐 사찰의 역사와 같이 한 스님의 행보가 남아 있다. 스님은 1858년에 김룡사 명부전 중수 및 불상 개금과 지장시왕도 조성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880년에 사천왕도 제작까지 김룡사의 일원(一員)으로 그 몫을 담당 했고 화장암 중창(1867년)과 대성암 중수(1886년-1888년)에 동참하는 등 김룡사와 산내암자의 사세를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기록에 전하지 않으나 두암스님 역시 문중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칠 제자들을 양성했고 제자 가운데 경운스님은 밀양 표충사 종정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두암스님이 입적하고 진영은 조사(祖師) 괄허스님 진영이 모셔진 김룡사 양진암의 영당에 봉안됐다. 기일(忌日)이 되면 경운스님을 비롯한 제자들은 진영 앞에 모여 예를 올리며 스승이 남긴 찬문을 유훈(遺訓)으로 생각하며 올곧은 삶을 본받고자 했을 것이다.
    Vol 3161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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