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7 법독성학과 ‘약물·독극물’분석

浮萍草 2015. 12. 18. 11:03
    ‘사고위장 살인’ 담요에 흘린 염화칼륨 몇 방울로 덜미
    염화칼륨 주입해 심장마비 사망 뺑소니 위장 보험금 타려다‘꼬리’
    캄보디아人 아내 교통사고 사망 시신 화장뒤라 부검할수 없지만 차량 혈흔 분석하자 수면제 검출
    “적은 양의 시료로 다양하게 감정 독극물 이용한 완전범죄 어려워”

    지난 11월 17일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독성학과 연구실에서 성분 분석을 앞두고 연구사가 시료를 확인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근 발생한‘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을 비롯해 가장이 일가족을 살해한 ‘서초 세 모녀 살해사건’,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두 명과 시어머니를 독극물로 살해한 ‘그라목손 연쇄 살인사건’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바로 범행에 약물이나 독극물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범죄분석 전문가들은 가장 손쉬운 범죄 도구로 약물·독극물·마약을 꼽는다. 실제로 약물과 독극물은 살인·강간·절도 등 많은 강력 범죄에 자주 등장하는 도구다. 그러나 범행을 도왔던 약물은 흔적을 남기고, 결국 범인은 꼬리를 잡히게 된다. ◇ 담요에서 발견된 독극물 = 지난 2008년 2월 16일 오후 7시쯤 광주 남구 지석동의 한적한 도로에서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차량이 치고 도망가는 뺑소니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박모(여·당시 36세) 씨는 머리를 크게 다쳤고 인근에 서 있던 남편 조모(당시 36세) 씨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끝내 숨졌다. 그렇게 뺑소니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은 조 씨가 부인 명의로 든 7억여 원의 사망보험 가운데 9700만 원을 타내고 나머지 5억2300만 원을 추가로 받아내려 시도하면서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박 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했고 그 결과 사인은 뇌진탕이 아닌 심장마비로 드러났다. 더욱이 박 씨의 말초혈액과 심장혈액 등에서 수면제인‘졸피뎀’까지 검출됐다. 조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박 씨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높아 졌다. 하지만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 씨가 어떻게 박 씨를 살해했는지가 증명돼야 했지만 박 씨의 사인인 심장마비와 남편 조 씨 간의 연결고리는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남편 조 씨의 차 안에 있던 담요에서 나왔다. 경찰이 차량 안에 있던 남색 담요에서 백색 결정을 발견,이에 대한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것. 국과수 법독성학과는 이 백색 결정이 치명적인 독극물 염화칼륨(KCL)임을 밝혀냈다. KCL은 저칼륨혈증 등에 사용되는 전해질 제제지만 과다 투여하거나 혈관에 직접 투여할 경우 사망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다만 전해질 성분으로 체내에 흡수돼 시간이 흐르면서 박 씨의 혈액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수사를 확대했고,조 씨가 간호사인 이모(여·당시 28세) 씨와 내연관계에 있었으며 이 씨가 일하는 병원에서 KCL 일부가 사라진 사실도 확인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빚 독촉을 받고 있던 조 씨가 내연녀와 함께 박 씨를 살해하고 보험금을 가로채기로 공모한 것. 조 씨는 술에 수면제인 졸피뎀을 타서 박 씨에게 먹인 뒤 자신의 차량에 타게 했다. 이후 박 씨가 잠들자 내연녀 이 씨를 불러 KCL 20㏄를 투약했다. 담요에 남아있던 KCL은 이때 이 씨가 주사기를 사용하면서 흘린 액체가 굳은 것이었다. 이 씨는 이렇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박 씨를 차에서 끌어내려 머리를 도로에 부딪히게 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하려 했다. 하지만 실수로 흘린 몇 방울의 KCL 때문에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 만삭 임신부의 몸에서 졸피뎀 = 지난해 많은 이의 공분을 샀던 ‘캄보디아 만삭 부인 살인 사건’의 진실 또한 범행에 사용된 수면제 성분의 약물 덕분에 밝혀졌다.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0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근에서 이모(45) 씨가 운전하던 승합차가 고속도로 갓길을 운전하다 비상주차대에 주차된 8t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안전벨트를 맨 이 씨는 갈비뼈를 다치는 데 그쳤지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조수석에 탑승했던 부인 A 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숨진 A 씨는 캄보디아 출신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이 씨와 결혼해 당시 임신 7개월 만삭의 몸으로 사고를 당했다. 경찰 조사에서 남편 이 씨는 자신의 졸음운전과 부주의로 부인과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유독 조수석만 크게 부서진 걸 수상히 여기던 경찰은 이 씨가 부인 A 씨 명의로 생명보험 26개를 가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씨는 A 씨와 결혼한 직후인 2008년부터 7년간 꾸준하게 본인과 가족 명의로 보험에 가입했고 생활고에 시달려 대출을 받으면서도 부인 명의의 보험료로 매달 360만 원을 납부했다. 보험 중에는 A 씨가 사망할 경우 이 씨가 30억 원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미 A 씨의 시신은 화장된 상태라 부검이나 추가 조사가 불가능했다. 이에 경찰은 사고 당시 차량 유리창에 묻은 A 씨의 혈흔과 조수석 에어백의 혈흔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 수면제 성분인 ‘디펜히드라민’이 검출 됐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약물 복용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임신 7개월의 임신부가 수면제를 복용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결국 이 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 무죄에 이어 현재 2심을 앞두고 있다. 인상환 국과수 법독성학과장은“범인들은 범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약물과 독극물을 사용하지만,결국은 그 약·독물이 남긴 흔적에 꼬리가 잡히게 된다”며“분석 기술의 발달로 적은 양의 시료로도 다양하게 감정할 수 있게 되면서 약·독물을 이용한 완전범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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