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3 ‘범행현장의 재구성’ 혈흔형태분석

浮萍草 2015. 11. 13. 12:41
    사방에 튄 핏자국 계산… ‘뒤집힌 자백’을 뒤집다
      
    ▲ (左)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과 흔적안전연구실 관계자들이 혈흔형태분석을 위해 사건 현장에서 혈흔 사진을 찍고 있다. 국과수 제공 ▲ (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전남 영광 마을회관 살인사건 현장에서 혈흔 사진을 찍고 있다. 국과수 제공 ▲ (右 ) 혈흔형태분석 결과에 따라 범인의 살인 당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물. 국과수 제공
    “내가 언제 사람을 죽였다 그랬어? 난 글쎄 죽이지 않았다니까.” ‘전남 영광 마을회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김모(69) 씨의 한마디에 수사관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범행 당시에 대한 진술이 오락가락하긴 했지만,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살인을 줄곧 인정하던 김 씨였다. 일주일 만에 자백을 완전히 뒤집을 것이란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범인의 자백으로 일사천리 진행되던 수사는 김 씨의 한마디에 갑자기 난관에 부닥쳤다. 목격자나 CCTV 등의 직접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를 찾아야 했다. ◇ 한적한 시골 마을, 잔인한 살인=김 씨는 지난해 3월 10일 오후 11시 영광군 군남면의 한 시골 마을회관에서 황모(사망 당시 58세) 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피해자 황 씨는 마을회관 거실에서 얼굴과 머리를 둔기로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황 씨의 얼굴은 가족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고 사망 지점으로부터 4∼5m까지 황 씨의 피가 튀어 사방에 혈흔이 낭자했다. 거실 한쪽에서는 범인이 황 씨를 살인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방용 도마가 발견됐다. 범행 당시 사건 현장을 벗어나 도주했던 김 씨는 곧 수사에 나선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체포 당시 김 씨는 황 씨의 혈흔이 잔뜩 묻은 잠바를 입고 있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황 씨가 나이가 많은 나에게 반말을 하며 무시하는 게 못마땅했다”며“같이 술을 먹다가 또 반말을 하자 화가 나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 했다. 범행동기도 정황도 더욱 명확해졌다. 그러나 사건 일주일 뒤 김 씨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사람을 죽인 기억이 없다”며 진술을 번복하더니,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자 기존의 자백을 완전히 뒤집기 시작했다. 자신이 황 씨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김 씨의 주장은 터무니없었지만,무시할 수 있는 진술은 아니었다. 김 씨를 범인으로 확신할 목격자나 CCTV도 없는 상황이었다. 황 씨에 대한 부검 결과도 죽음의 이유와 살해 방법을 이야기해줄 뿐 “범인은 김 씨다”라고 지목하지는 못했다. 부검의는 “‘혈흔형태분석(Blood Spatter)’을 한번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 핏자국들의 증언=국과수 법안전과 흔적안전연구실은 살인 현장에 대한 혈흔형태분석에 나섰다. 다행히 사건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살인 현장은 그대로 유지돼 있었다. 혈흔형태분석이란 범행 현장에 있는 모든 핏자국들의 모양을 물리학적·수학적으로 계산해, 피해자의 위치와 자세 및 범인의 동선 등을 재현하는 것이다. 즉 수천 개 핏방울의 위치가 증언하는 대로 범행 현장을 재구성하는 것. 주요 분석 대상은 황 씨가 머리 등을 가격당하면서 마을회관 바닥에 흘린‘충격 비산혈흔’과 도마를 휘두를 때 벽면에 방사된 ‘휘두름 이탈혈흔’이었다. 또 범행도구인 도마에 묻어있는 혈흔과 김 씨가 입고 있던 잠바와 바지에 분포된 핏자국까지 종합적으로 재구성에 들어갔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피가 묻은 잠바와 바지를 입은 남성이 도마의 왼쪽 모서리로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수십 차례 이상 내리쳐 살해했다는 것이다. 즉, 사건 현장 및 범행도구의 혈흔과 의복의 혈흔이 정확하게 일치해, 당시 그 의복을 입었던 사람 외에 다른 누군가가 황 씨를 가격한 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현장 혈흔에 찍혀 있던 김 씨 발 모양의 직조흔(섬유 모양의 흔적)은 김 씨가 살해 후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거실 주변을 수차례 돌아다녔던 동선까지 정확하게 그려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 씨는 또다시 진술을 바꿨다. 그는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도마를 휘둘렀는데, 황 씨가 갑자기 죽었다”고 주장했다. 즉 살인의 고의성 없이 휘둘렀는데 황 씨가 비명횡사한 것이기 때문에,자신의 죄가 ‘살인’이 아닌 ‘치사’라는 것. 하지만 김 씨의 두 번째 변명에 대해서도 핏자국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방바닥의 혈흔 유형으로 추론했을 때 바닥으로부터 머리 하나의 높이(약 20㎝)에서 발혈(發血)이 시작됐다는 것. 서 있거나 앉아있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가격을 당했다면 발혈의 위치가 1m 이상이어야 하는데,발혈 지점의 높이로 보아 누워있는 상태에서 수십 차례 가격을 당한 것이다. 결국 김 씨는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혈흔형태분석을 진행한 국과수 법안전과 흔적안전연구실의 서영일(41) 연구사는“혈흔형태분석의 첫 번째 목표는 범행 현장의 재구성인데 이렇게 상황에 따라 범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며“특히 살인사건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범인이 진술을 바꾸거나,두려움 때문에 상황을 부정확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어 혈흔형태분석이 자주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草浮
    印萍

    ‘피의 증언’ 따라가는 수사기법
    수천개 발혈점 찾아 연결하면… 결국 살해지점 근 국민적 관심사인 ‘이태원 살인사건’에서도 ‘혈흔형태분석(Blood Spatter)’은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아서 존 패터슨(36)에 대한 재판에서 당시 현장의 혈흔형태분석 결과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피의 증언’을 따라가는 수사기법인 혈흔형태분석은 혈흔의 모양을 근거로 범행 현장을 재구성하는 분석 방법이다. 자칫 우연에 따라 형성된 피의 모양에 의존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점성이 높은 피의 특성과 중력 및 피의 분출 압력·포물선 공식·관성의 법칙 등의 물리학적 원리와 수학적 계산법이 결합한 과학적 분석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타원 형태의 혈흔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고 한다면 이 피의 모양으로 혈흔이 어느 방향에서 어느 각도로 날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 직각 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를 알면 그 끼인각을 알 수 있다’는 삼각함수에 타원 혈흔의 높이와 길이를 적용하면 피가 어느 각도에서 방바닥에 떨어졌는지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천 개 핏방울의 발혈점을 찾아 연결하면 결국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지점으로 모이게 된다. 피가 타원형이 아닌 정원형을 띠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바닥으로부터 65∼90도의 각도로 낙하하면서 둥글게 혈흔이 형성된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테두리의 형태가 얼마나 분산돼 있는지를 비교·계산해 첫 발혈 지점의 높이를 알아낼 수 있다. 이렇게 발혈점들을 찾아 연결하면 바로 범인과 피해자의 동선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혈흔의 형태로 범행의 도구도 판가름할 수 있다. 끝이 뾰족한 칼끝에서 떨어진 혈흔과 뭉툭한 야구방망이에서 떨어진 혈흔의 모양이 달라 이를 추정할 수 있다. 또 변사체가 임의로 옮겨지면서 남는 왜곡혈흔과 혈흔 속에 남아있는 족적 및 지문 분석을 통해서도 범행현장을 완전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혈흔형태분석이 ‘피의 증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혈흔형태분석은 주로 직접증거보다는 범행 현장을 재구성한 뒤 범인의 진술과 비교, 서로 다른 부분을 추궁함으로써 자백을 받아내는 데 주로 쓰인다. 하지만 혈흔형태분석 자체가 직접증거로 인정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전남 영광 마을회관 살인사건이다. 또 지난 2012년 함께 도박을 하던 일행 두 명을 둔기로 때려 살해한 ‘대전 판암동 살인사건’도 혈흔형태분석의 증거가 인정돼 유죄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