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5 법화학과의 ‘미세증거물’ 수사

浮萍草 2015. 12. 10. 09:45
    살인현장 ‘0.1㎜ 유리’, 용의자집 유리와 비교 ‘同一’ 밝혀내
    시신 밀가루 뿌리고 증거 인멸 유리조각 2개의 ‘화학적 지문’ 용의자 것과 ‘성분 일치’ 확인
    범행도구·흔적 지울수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미세 증거물 사건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

    11월 12일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원구원에서 법화학과 소속 연구사들이 전문 장비를 이용해 범행 현장에서 확보된 증거의 화학적 지문을 분석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늘날의 살인범과 20년 전 살인범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흔적’이다. 범죄와 수사를 다룬 드라마·영화의 내용이 더욱 구체화되고 묘사도 생생해지면서 요즘 범인들은 어떻게 증거를 없애고 현장을 처리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거에는 사건 현장에 지문과 머리카락,옷가지와 범행도구 등을 남기는 것이 예사였지만 지금 범인들은 CCTV를 먹통으로 만들고 사전 알리바이까지 정교하게 조작 하며 범죄의 흔적을 없앤다. 그러나 범인이 절대 인멸할 수 없는 증거가 있으니, 바로 현장에 떨어져 쉽게 보이지 않는 범인의 ‘미세증거물’이다. ◇ 현장에 떨어진 0.1㎜ 유리조각 = 2009년 4월 18일 서울 관악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공모(여·당시 79세) 씨가 가슴과 목을 칼에 찔린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범인이 사용한 범행 도구는커녕 지문과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더욱이 범인은 자신의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시신 위에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았다. 평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성격이 아니었고, 찾아오는 이도 만나는 사람도 없는 공 씨였다. 또 강제로 문을 딴 흔적이 없고 집안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공 씨를 잘 아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서울 관악구 노인 살인사건 당시 범인의 발에 묻어
    현장에 남아있던유리조각 두 개(A, B).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경찰은 범인으로 공 씨의 옆집에 살고 있던 절도전과 3범의 한모(당시 22세) 씨를 의심했다. 그러나 용의자는“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다른 장소에 있었고,공 씨의 집에 드나들 만큼 친분이 있지도 않다” 고 발뺌했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공 씨의 집 입구와 거실에서 우연히 발견된 0.1㎜의 유리조각 두 개에서 나왔다. 사건 현장을 다시 둘러보던 경찰의 눈에 우연히 떨어진 유리조각이 들어왔지만 당시 공 씨의 집 안에는 유리가 깨진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 유리조각이 제 발로 공 씨의 집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공씨 집에 따로 왕래하던 인물도 없었던 상황에서 해당 유리조각은 사건 발생 당시 용의자의 발에 묻어온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탐문 수사를 통해 의심하고 있던 한 씨가 며칠 전 많은 양의 깨진 유리를 인근 공터에 갖다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둘러 공터에 가서 한 씨가 버린 유리를 확보했다. 또 한 씨의 동의를 받고 집안을 살펴보던 중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리조각 1개까지 발견했다. ◇ ‘화학적 지문’이 지목한 범인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화학과는 유리조각에 대한 감정에 들어갔다. 총 감정대상은 5개의 유리조각. 가장 중요한 두 개(A, B)는 범인의 발에 묻은 채 공 씨의 집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 것이었다. 또 비교 대상으로 공 씨의 집에서 가져온 유리(C)와 한 씨의 집 안에서 나온 유리조각(D),공터에 한 씨가 버린 유리조각(E)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유리가 만들어진 날짜와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화학적 지문’(Chemical fingerprinting)을 가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5개 유리조각들이 같은 유리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었다. 감정 결과는 명확했다. 공 씨의 집에서 가져온 유리 C만 생산 장소와 제조 과정이 다른 유리였고 나머지(A, B, D, E)는 모두 한 씨의 집 유리와 같은 화학적 성분을 띠고 있었다. 즉 용의자 발에 묻어 살인현장으로 이동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조각(A, B)의 출처가 한 씨의 집이란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국과수의 이러한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살인현장에 간 적이 없다는 한 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추궁했다. 그러자 한 씨는 이내 범행을 자백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뚜렷한 직업이 없이 생활하며 인터넷 게임에 중독됐던 한 씨가 게임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 한 씨는 평소 가지고 있던 만능 열쇠로 공 씨 집 출입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인기척을 느껴 잠에서 깨어난 공 씨를 부엌 싱크대 서랍에서 꺼낸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에도 현장을 정리한 뒤 공 씨 가방에서 700원을 훔쳐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은 한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결국 공 씨의 피가 묻은 한 씨의 가죽장갑까지 발견했다. 이 사건의 증거 감정을 했던 민지숙 국과수 법화학과장은 “범행 과정에서 흘린 0.1㎜의 유리조각이나 범인의 옷에서 떨어진 미세한 섬유조직 등을 우리는 미세 증거물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범인이 남길 수밖에 없는 미세증거물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만 고유의 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금속,나무,물 등의 무기물도 고유의‘화학적 지문’을 갖기 때문에 아주 작은 흔적도 범인이 누군지를 지목해준다”고 설명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