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4 ‘미제사건의 열쇠’ 유전자 DB

浮萍草 2015. 11. 21. 00:00
    사라진 살인자→범인 당뇨병력 확인→변사체서 DNA… ‘10년前 자살’ 판명
    유력 용의자 족적도 없이 사라져 아들 구강상피 채취해 감정 의뢰
    변사자들 DNA DB 일일이 비교 사건 2달뒤 발견 시신 99% 일치
    ‘DNA DB화 법안’ 국회 통과안돼 법적근거 마련돼야 유전정보 구축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 연구사들이 지난 2일 특수장비를 이용해 연구실에서 DNA 비교분석을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munhwa.com
    “살인자가 사람을 찔러 죽이고는 족적 하나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진 거예요. 저희 말로는 증발했다고 하는데,정말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10년 전인 2005년 여름 60대 여성을 집 앞으로 불러내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도주한 용의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도주나 은신할 경우에는 혈흔이 묻은 옷가지 등을 정리하거나 흉기 등 증거를 없애는 과정에서 한 번은 외부에 노출되기 마련이지만 이 사건의 용의자는 현장에서 여성을 찌르고 도주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세간에는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부터 신분을 세탁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 까지 추측만 난무했다. 그러나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통신 기록이나 출입국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두 차례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미제 살인사건으로 남았다. 그런데 10년 뒤인 2014년 이 씨의 행방을 찾기 위한 세 번째 재수사가 시작된다. ◇ 계획된 살인, 사라진 범인=이모(당시 66세) 씨는 2005년 7월 15일 오후 10시 15분 서울 노원구 상계1동의 한 아파트단지 놀이터에서 장모(여·당시 62세) 씨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이 씨가 평소 사이가 안 좋던 장 씨가 운영하는 불암산 입구 매점을 불법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했고, 이를 이유로 둘 사이에 큰 말다툼이 있었던 날 밤이었다. 이 씨는 늦은 밤 장 씨를 집 앞으로 불러낸 뒤 미리 준비한 흉기로 목을 찔렀다. 장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범인은 명확했다. 경찰이 통신 기록을 확인한 결과 장 씨와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도 이 씨였고 현장에서 칼을 들고 있던 이 씨를 본 목격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씨가 거주하고 있던 집안에서 장 씨를 죽이겠다는 이 씨의 친필 메모까지 발견됐다. 평소 이 씨와 장 씨가 서로 감정이 안 좋았다는 주변인들의 진술도 있었다. 그러나 조사를 받아야 할 피해자는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사망했고,용의자로 특정된 이 씨는 범행 후 일체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휴대전화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고,인근 CCTV에도 이 씨의 흔적은 없었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은신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십 차례 잠복수사를 벌였지만 이 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년 가까이 진행되던 수사는 기소중지(수배)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후 2012년 경찰은 이 씨에 대한 재수사와 검거에 나섰지만 역시 이 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 사건의 전말=2014년 서울 도봉경찰서가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선 경찰은 이 씨에 대한 혐의를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해 공소시효를 연장한 뒤 체포영장을 다시 발부받았다. 그러던 중 경찰은 이 씨의 아들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씨가 20년 전부터 심한 당뇨병을 앓아 꾸준히 약을 복용해 왔다는 것.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이 씨의 요양급여 내역 등을 확인했지만 사건 발생 시점을 기준 으로 그 이후에 이 씨가 당뇨약을 처방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경찰은 당뇨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생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 씨의 사망 가능성을 처음으로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씨 아들의 구강상피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 법유전자과는 사건이 발생한 2005년 7월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신원불상 변사자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이 씨 아들의 DNA와 일일이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바로 살인사건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한 변사체와 이 씨 아들의 DNA가 99.99%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살인사건 발생 두 달가량 뒤인 2005년 9월 27일 경기 군포시 수리산의 깊은 산중에서 목과 몸이 분리된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바로 이 씨의 시신이었다. 백골화가 이미 진행된 점으로 보아 사망한 지 한 달 이상 된 것이었다. 발견 당시 나무에 걸려 있던 끈과 시신의 상태를 봤을 때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측됐다. 타살의 가능성을 보고 부검과 유전자 감정도 진행한 결과 목을 매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살인을 저지른 뒤 곧바로 산으로 도주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쫓아온 범인의 사망을 DNA 검사로 확인한 것이다. 국과수 법유전자과 임시근 신원확인정보관리실장은“10년 전 부검과 유전자 분석을 위해 국과수에서 유전정보를 확보,데이터베이스(DB)로 보관해 두지 않았다면 이 씨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남았을 것”이라며“연간 500명의 불상 변사자와 5000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만큼,이들에 대한 DNA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다면 범죄 수사의 단서를 제공하고 변사자 및 실종자의 가족에게 빠르게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신원불상 변사자 및 성인 실종자에 대한 유전정보를 구축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2005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 18세 미만 아동이 실종됐을 시에는 국과수가 그 가족의 DNA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놓도록 했지만, 아직 성인 실종자 및 신원불상 변사자에 대한 DNA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김다영 문화일보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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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문 개가 누구네 개요?”… 법생물학 감정의뢰도 급증
    
    “나를 문 개(犬)가 김 씨네 개인지 박 씨네 개인지 좀 확인해 주소.”
    최근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의 DNA를 분석하는 감정 기법이 발전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법생물학’과 관련한 감정 의뢰가 급격히 늘고 있다. 
    법생물학이란 사람이 아닌 동물·식물·미생물 등 비인간종(non-human)의 유전자를 분석해 동물의 친자관계를 확인하거나 식물의 동일 종(種)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다.
    예를 들어 동네를 돌아다니던 개에게 물린 A 씨가 자신을 문 개의 주인에게 피해보상을 제기하려 할 경우 법생물학을 통해 그 책임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상처에 남아 있는 개의 타액(침)을 채취해 DNA 정보를 검출한 뒤,이후 동네 개들의 타액을 채취해 상처에 남아 있던 개의 유전정보와 비교하면 어떤 개가 A 씨를 
    물어 상처를 입혔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곤충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 
    빈집털이범이 도망을 가다 집에 심어져 있던 감나무의 감을 밟았다면 법생물학을 통해 용의자 신발에 묻은 이물질이 해당 감나무의 감인지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이양한 국과수 법유전자과장은“법생물학을 기반으로 동물이나 식물,미생물 등 다양한 생물 종에 대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경우,범죄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동물의 종 판별이나 식물의 품종 식별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며“국과수 또한 다양한 생물 종에 적용 가능한 표준화된 DNA 감정 기법의 개발을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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