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8 시신서 死因 찾아내는 ‘부검’ <끝>

浮萍草 2015. 12. 31. 10:52
    아사한 영아 위장서 분유 확인… ‘엄마 누명’ 벗겨
    생후 1년 미만 영아 사망률 3% 목격자 없거나 돌연사 땐 ‘미궁’
    시신에 남은 출혈·골절 등 분석 질병·방치·사고 등 死因 밝혀내
    “말 못하는 영아가 왜 죽었는지 얼마나 고통 컸는지 알 수 있어”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컴퓨터 단층촬영(CT) 부검실에서 법의관들이 부검 대상 시신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서 법의관들이 부검을 통해 인체 조직 샘플을 분류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은 3%다. 아기 100명 중 3명은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사망하는 것이다. 아동학대와 방임, 각종 사고로 영아들이 허무하게 죽어가지만 고통을 표현하기는커녕 옹알이조차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아 사망 사건은 종종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아에 대한 부검이 시작되면 허무한 죽음의 이유와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아이가 느꼈을 고통이 시신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 2㎏ 미숙아의 허무한 죽음 = 지난해 5월 29일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정모(생후 7개월)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친모 A 씨는 이날 오후 3시 30분쯤 분유를 먹이고 오후 8시쯤 다시 분유를 먹이기 위해 방에 들어갔다가 아이의 입술이 파랗게 변한 것을 발견,황급히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 상태가 이상했다. 생후 7개월이면 7∼8㎏의 몸무게여야 하는데 정 양은 2㎏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은 누가 봐도 굶어 죽은 모습이었다.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죽어간 정 양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에 들어갔다. 부검을 진행한 국과수 관계자는“아이 몸의 지방이 정말 0%에 가까운 상태로 피부밑 지방조직이 없어 바로 장기와 뼈가 보일 정도였다”며 “사인 또한 영양실조로 나왔는데 이 정도면 아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곧바로 부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아동에 대한 방임이 의심됐던 만큼 정 양의 분유 섭취량부터 병원 진료 기록까지 확보해 분석에 나섰다. 그러나 그렇게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너무 허망했다. 사실 정 양은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첫째로 임신 29주 만에 1.2㎏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쌍둥이 동생과 함께 2개월가량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은 뒤 건강이 회복되면서 2.36㎏의 몸무게로 퇴원했고 그렇게 정 양과 동생은 건강을 되찾는 듯했다. 문제는 A 씨가 정 양이 숨지기 2개월 전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 번에 10숟가락씩 타던 분유를 4∼5숟가락씩 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영양 흡수가 원활하지 못한 미숙아 정 양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고 결국 정 양은 아사(餓死)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정 양을 학대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정 양을 데리고 꾸준히 병원도 다녔고 숨지기 약 40일 전 받은 종합검진에서 모든 항목에서 ‘양호’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부검 당시에 정 양의 위장에서 소량의 분유가 나온 것도 A 씨가 꾸준히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 소아과 전문의들도 정 양이 쌍둥이 동생과 달리 스스로 영양 흡수를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뒤늦게 드러난 허무한 죽음의 이유에 친모 A 씨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 치료받지 못한 아이 = 영아 사망사건 가운데 이렇듯 제때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2014년 3월 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사무소 부검실에 이모(생후 6개월) 양의 시신이 들어왔다. 이 양은 이틀 전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병원 이송 당시 사망 원인은 ‘부종’(浮腫·신체조직의 틈 사이에 조직액이 괸 상태)으로 인한 호흡부전이었다. 하지만 이 양의 호흡을 멈추게 한 부종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검을 시작하자 또 다른 흔적들이 속속 나왔다. 이 양의 머리 부분이 부풀어 있었고 오른쪽 눈꺼풀에 출혈의 흔적과 입 주변에는 발적(피부 및 점막이 빨간빛을 띠는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 30㎝의 두개골 골절이 드러났다. 이 양의 호흡을 곤란하게 한 부종이 바로 머리 골절로 인한 것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신생아의 두개골은 성인보다 탄력성이 좋아 쉽게 골절되지 않는다”며“이 골절로 인해 출혈이 있었고 출혈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머리가 부풀어 올랐던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이 두개골 손상이 혹시 학대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 집중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 양의 친모 B 씨는 아이의 두개골 골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며칠 전 아이의 눈 주변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 두 차례 피부과를 방문했고,그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큰 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는데 아이가 사망한 상황 이었다. 경찰은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별법 위반 혐의(방임)로 이 양의 어머니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수경 국과수 법의관은“말 못하는 영아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부검뿐일 경우가 많다”며“각별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영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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