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7 정봉경현(靜峯景賢)

浮萍草 2015. 12. 5. 11:17
    자비와 인의가 3대를 잇다
              慈仁積累 賴被後昆 자비와 인의를 쌓아 후손에게 미치니 追慕德義 敢忘其恩 덕과 의를 추모하며 감히 그 은혜 잊으리 靈珠出髓 窮劫永存 영주(사리)가 정수에서 나와 겁이 다하도록 남겨두고 模寫七分 師承有源 진영을 그려놓으니 스승을 잇는 근원이 되네.
    룡사에 모셔진 정봉경현(靜峯景賢, 19세기) 선사 진영에 실린 눌암정찬(訥庵政燦, 1867~1880 활동)의 영찬이다. 정봉스님은 환성지안의 후손으로 대승사와 김룡사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99)의 법맥을 계승했다. <괄허집(括虛集)>(1888년 간행)에 수록된 행장에는 “(괄허)대사의 법을 이은 이가 10여 명이 있으나 완송척전(玩松陟銓)이 골수를 이은 사람이다. 완송이 정봉경현을 배출하니 정봉은 부지런히 법을 닦고 염불삼매경에 들었으며 시적(示寂)하던 날은 산이 울고 골짜기도 함께 응하였다. 화화(化化)하던 날 저녁에 사리가 빛나고 신령스러우니 이는 보기 드문 상서로운 모습”이라는 정봉스님에 관한 짧은 글이 남아있다. 스님의 사리는 1887년에 김룡사 일주문 옆 언덕에 세워진 승탑에 모셔졌다. 찬자인 눌암스님은 영찬 말미에 자신을 화악문인(華嶽門人)이라 소개하고 있다. 눌암스님이 화악지탁(華嶽知濯, 1750~1839)의 후손임은 화악스님의 유고집인 <삼봉집(三峰集)>(1869년 간행)에서 확인된다. <삼봉집>에는 화악지탁의 3세손이자 화담스님의 수선제자(受禪弟子)로 눌암스님이 올라 있다. 19세기 후반 눌암스님은 화악스님 화담스님과 인연이 깊은 김룡사에 주석하면서 정봉스님과 그의 제자 용계우홍(龍溪宇弘)과 함께 화장암 중창(1867년)에 참여 했고 김룡사 사천왕도 조성(1880년)에는 정봉스님의 손상좌인 두암서운(杜巖瑞雲)과 함께 하며 3대에 걸친 인연을 돈독히 이어갔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봉스님과 후손을 지켜 본 눌암스님은 정봉스님 후손의 번성함이 스님의 자비와 인의에 비롯되었으며 스님의 진영이야말로 그 증명이라는 추모의 찬문을 남겼다.
    Vol 3159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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