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6 영호일홍(映湖佾)

浮萍草 2015. 11. 28. 12:33
    ‘죽비’라 불러도 부족한 선지식
            一幅丹靑 孃生面目 한 폭의 진영 아름다운 참모습 月落澤淸 是甚樣子 달이 지는 맑은 연못은 어떤 모습인가 歟一水 万派皆然 잔잔한 한 줄기 물, 만 물결 모두 그러하다. 且道 또 말해보라 如何是 臨濟曺洞쓳仰 어느 것이 임제 조동 위앙인가? 古人云 옛 사람이 말하기를 喚作竹則觸 죽비라고 불러도 잘못되었고 不喚作竹귀則背 죽비라고 부르지 않아도 잘못 됐다. 汝旣如是 吾亦如是 너도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다.
    문사 영호일홍(映湖佾?,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선사 진영 뒤편에 적힌 무경관주(無鏡觀周, 1830~1846 활동)의 영찬이다. 안타깝게도 영호스님은 진영을 제외하고 자취를 되돌아 볼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진영 제작은 수법제자 태운연선(泰雲璉璇)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제작이 여법하게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기 위해 응허유인(應虛侑仁)이 참여했다. 증사인 응허스님이 호암체정의 후손이고, 찬자인 무경스님이 월저도안의 후손인 점으로 보아 영호스님 역시 편양언기의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1864년 9월 무경스님은 몸을 깨끗이 하고 영호스님의 진영을 제작한 후 찬문을 지었다. 무경스님은 19세기 전반 경상북도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1830년 조성한 안동 중대사의 영산회상도,현왕도 신중도를 비롯해 대승사 윤필암 영산회상도가 전한다. 스님은 화승으로 불사를 행하는 한편 출가자로서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노년인 1846년 김룡사 화장암에서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의 백련결사와 유사한 정토왕생계를 조직하여 정진했다. 또한 같은 해 찬한 영호스님 찬문에 선승 무문혜계(無門慧開, 1183~1260) 선사의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43칙 ‘수산죽비(首山竹)’를 인용할 정도로 교학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무경스님은 영찬에서 만 물결의 근원이 한 줄기의 물결이라 하며 진영에 감춰진 영호스님의 참 면모를 보길 촉구하는 한편“죽비라고 불러도 잘못되었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아도 잘못됐다”는 공안 특유의 역설로 진영 역시 영호스님의 또다른 참모습일 수 있음을 노래했다.
    Vol 3157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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