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5 의운자우(意雲慈雨)

浮萍草 2015. 11. 21. 12:20
    팔도 승풍 관장한 대선사
              讚曰 찬하여 이르노니 漪歟 吾祖之德也 아~ 우리 법조의 공덕이여 德峯長在 공덕 산이 장대하고 大乘寺永牢 대승사를 영원하게 하였으니 雙蓮花開處 한 쌍의 연꽃이 꽃피우는 곳에 四佛放玉毫 사방에 부처님이 옥호광명을 놓는다.
    승사에 모셔져 있는 의운자우(意雲慈雨, 1858~1870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취허상순(就墟尙順, 1865~?)의 영찬이다. 1913년에 취허스님은 김룡사의 삼장보살도와 대성암 아미타불회도 제작에 증사(證師)를 맡았으며 같은 시기에 대승사 묘적암에는 의운스님의 후손인 석운 봉정(石雲奉政)이 주석하고 있었다. 영찬 말미에 밝혔듯이 취허스님은 의운스님의 방손(傍孫)이며, 석운스님은 의운스님의 후손으로 모두 환성지안의 법맥을 계승했다. 평소 의운스님 진영에 영찬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석운스님은 취허스님을 찾아가 “우리 법조(法祖)인 의운스님은 평생 일로 불상을 그려 중생의 복전(福田) 을 짓게 한 것이 곳곳에 한량없습니다. 또한 대승사에 화재를 당해 곤경에 처하자 의운(意雲)으로 맑고 밝은 자비의 비(慈雨)를 뿌려 가람을 중흥시켜 삼보가 길이 존숭하게 하였음에도 한 구의 찬송이 없습니다”라며 찬문을 부탁했다. 이에 취허스님은 “대업에 이름이 없고 큰 공에도 덕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무공무덕(無功無德)이란 뜻을 그대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사 가장 어려운 것은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며 이름을 떨치는 데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릅니다. 어려움이 없이 어떻게 능히 이름을 천년에 전하고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게 하겠습니까!”라며 사불산 대승사 쌍련당을 빛내고 평안토록 노력한 의운스님을 찬하는 글을 지었다. 석운스님이 취운스님에게 설명했듯 의운스님은 19세기 후반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를 이끈 수장으로 유명하다. 현재 스님이 그린 불화와 진영은 양산 통도사, 영천 은해사, 울진 불영사, 서울 흥천사, 영월 보덕사 등지에 전한다. 그러나 취허스님은 석운스님에게 말하고자 했던 천년에 전하고 사람들의 존숭을 받을 수 있는 의운스님의 이름은 부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대승사를 다시 일으킨 중창주에 그치지 않았다. 취허스님은 부처님(玉毫)을 빛낸 사불산 대승사 의운스님을 영찬에 담고자 했고 이를 위해 선교양종을 통섭하고 밀양 표충사 종정(宗正)을 지내면서 팔도의 승풍을 관장했던 대선사(大禪師)라는 긴 영제(影題)에서 그 이름을 찾아 영찬을 짓고 연유(緣由)를 후세에 남겼다.
    Vol 3155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