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국과수의 범죄학개론

2 ‘문화재 범죄’ 첨단 수사

浮萍草 2015. 11. 12. 11:55
    ‘분광비교분석기’로 보니 땜질·덧칠… 증도가자 위조 파헤쳐
    지난 2일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지털분석과 연구실에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번각본을 본떠 만든 복사본을 강태이(오른쪽) 연구사가 모니터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증도가(證道歌)자(字)의 일부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증도가 번각본 서체와 비교하다 한국 옥편에도 없는 한자 발견 내·외부 주석함량까지 비교 확인 도난당한 뒤 훼손 심한 고문서 나노미터 범위로 자외선 분석 10년만에 원래 주인에 돌려줘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냐,세계 최대(最大)의 망신이냐.’ 지난 10월 31일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알려지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증도가(證道歌)자(字)’ 중 일부가 위조된 것 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발표됐다. 증도가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보다 138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지며“역사교과서에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에 대한 서술이 바뀔 것”이라거나“세계사적 쾌거를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학계와 사회의 관심을 받았던 유물이었다. 불과 국과수의 발표 1년 전 문화재청의 용역연구를 통해 증도가자로 추정되는 109점의 고려활자 가운데 62점이 증도가자가 확실하다는 결론이 난 데다,국가 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4년에 진짜로 판정된 8점(고려활자 5점,증도가자 3점) 가운데 고려활자 1점을 제외한 나머지 7점이 모두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증도가자의 진위에 대한 의구심과 검증 요구가 높아졌고 경찰은 범죄 가능성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 자체 개발 서체 비교 프로그램 검증하다 위조 사실 발견 = 본래 국과수는 증도가자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감정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국과수 디지털분석과에서 자체 개발연구 중이었던‘서체 비교 프로그램’의 마지막 테스트로 증도가자와 증도가 번각본(인쇄된 서적을 보고 다시 판을 새겨 찍어낸 책)의 서체를 비교해 이 프로그램의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보자는 취지에서 검증에 나섰던 것. 분석을 진행한 강태이 국과수 연구사는“해당 활자가 고려시대 것이라는 데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면서“단순히 증도가자가 증도가라는 불교 서적을 만드는 데 사용된 활자라는 사실을 자체 개발한 서체 비교 프로그램을 이용해 검증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지난 4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활자 1점,청주고인쇄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7점(고려활자 4점,증도가자 3점)을 넘겨받아 증도가 번각본과 비교를 시작했다. 국과수는 기초 조사를 위해 2014년 문화재청이 증도가자로 추정되는 109점의 고려활자 가운데 62점이 증도가자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린 용역보고서부터 검토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번각본에 없는 글자라 대조할 수 없다고 설명한 활자 ‘수(受)’자가 번각본에서 3개나 발견된 것이다. 더욱이 용역보고서에는 활자의 ‘연자매 용()’자를 ‘귀머거리 롱’(聾)자로 잘못 읽는 오류까지 나타났다. 연자매용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쓰인 적이 없어 한국 옥편에도 없는 ‘중국의 한자’였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 오류를 발견한 국과수는 활자의 진위에 의심을 품고 외관검사에 들어갔고,육안으로 보아도 식별이 가능한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에 국과수는 첨단장비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활자 위조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분광비교분석기’를 이용해 특수광 사진을 찍어 분석하자 활자 앞면에 먹물을 덧칠한 흔적과 뒷면에 땜질 흔적을 발견했다. 활자의 연대 기록을 조작하기 위해 오래된 먹을 활자에 덧칠해 탄소 분석 결과에 혼선을 주는 것은 활자 감정 위조에 널리 쓰이는 수법이었다. 무엇보다 3D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를 통해 사진을 찍어보자 활자 밖을 다른 물질로 덧칠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식된 부분의 내·외부 성분을 분석해봐도 주석 함량이 달라 동일 시기에 동일한 방법으로 주조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증도가자의 위조 가능성이 드러나는 순간은, 서체 프로그램 검증이라는 우연에서 비롯됐다. ◇ 문화재 범죄를 향한 과학의 칼끝 = 국과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첨단장비와 과학적 분석기법을 문화재 범죄에 적용해 사건을 해결해 왔다. 지난 9월 30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문화재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절도된 문화재를 매입해 유통하는 전문업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경북 안동의 장물업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수십 점의 고문서 및 문화재를 확보했지만, 유통 과정에서 훼손이 심해 본래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10월 13일 국과수에 당호(堂號)와 낙관(落款) 부분이 먹물 등으로 검게 칠해진 고서적(시전·詩典) 6권의 주인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특수장비를 이용해 당호와 낙관 부분을 확대한 뒤 분광비교분석기로 적외선에서 자외선까지 5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범위로 빛을 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을 찾았다. 이를 컴퓨터로 화상처리하자 당호 세 글자 중 앞 두 글자가 ‘농산(農山)’인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청 감정위원과 한국고전번역원 등에 문의해 경북 안동 ‘두릉고택’의 당호가 ‘농산정(農山亭 )’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해당 가옥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10여 년 전 고서적을 도둑맞은 뒤 애타게 찾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경찰은 장물업자 임모(45) 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해당 고서적을 10여 년 만에 본래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국과수 관계자는“과거 문화재 범죄는 주로 인문학적 방법이나 고고학적 방법으로 실마리를 풀어왔다”며“이젠 첨단 장비와 기법을 동원해 가장 과학적인 방법 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 증도가자란
    증도가(證道歌)자(字)는 고려의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1239년)’를 인쇄한 금속활자를 일컫는다. 증도가자로 추정됐던 금속활자는 총 109점으로, 다보성고미술박물관이 101점,국립중앙박물관이 1점,청주고인쇄박물관이 7점을 각각 소장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지난해 문화재청의 용역연구를 통해 다보성고미술관 소장 59점과 청주고인쇄박물관 3점 등 62점이 진짜 증도가자로 판명 난 바 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지난달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소장한 7점의 고려활자와 증도가자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음에 따라 학계에서는 그 진위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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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분석과 강태이 연구사
    “항상 100% 정확성 추구… 긴장의 끈 놓을 수 없어”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인문과학이든 기술과 현상을 다루는 자연과학이든,과학은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도가(證道歌)자(字)’의 위조 가능성을 밝혀내 주목받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디지털분석과의 강태이(41 ·사진) 연구사는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연구사는“증도가자가 가짜라는 사실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이번 감정 결과가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면서도“하지만 인문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옳다 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사는 문화재 및 고서적은 물론 수표와 문서 등 국과수에서 위변조 감정 전문가로 불린다. 지난 2013년 위조수표 사기단이 무려 100억 원짜리 수표를 위조해 전액을 인출하면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도 위조수표를 직접 감정했다. 당시 강 연구사는 금액 부분에 위조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은행원이 연루된 상황에서 백지수표가 건네졌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사건 해결을 도왔다.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2006년 국과수에 자리 잡은 그는“위변조 사건은 감정 결과에 따라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사건이 많아 심적 부담감이 크다”며“고서적과 문화재 등도 결국 그 가치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매 순간 100%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감정의 정확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강 연구사는 지난 7월 이중 국과수 디지털분석 과장과 함께 저명한 국제 과학 수사 학술지인 ‘FSI(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에 국내 최초로 필적 감정의 신뢰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수사 문서감정 전문가에 의한 다양한 한글 필적 감정 입증(Multiform Korean handwriting authentication by forensic document examiners)’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강 연구사는 장문·단문·서명 등으로 구성된 180개의 한글 문장에 대한 필적감정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여 그 정확도를 각각 측정했다.
    그는“4명 이상의 문서감정 전문가가 의견을 교환하며 필적을 감정할 때 오류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증명됐다”며“감정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다영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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