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雪山 따라 겨울이 흐르고, 사내는 꿈을 꾼다

浮萍草 2015. 12. 9. 10:14
    겨울 횡성과 자작나무를 닮은 원종호
    '월인석보' 발견된 고찰 수타사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아홉사리 고갯마루엔 새하얀 자작나무숲이 반긴다 꿈꾸는 농부 원종호는 고향 땅에 미술관 만들어… 풍수원 깊은 골엔 조선인 신부가 세운 성당이 침묵한다 원도 횡성 섬강은 동에서 서로 흐른다. 그래서 땅 이름도 가로 횡자를 넣어서 횡성(橫城)이다. 삼국시대 이래 횡천(橫川)이었는데 조선 초기에 옆동네인 홍천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횡성으로 바뀌었다. 태종 16년, 1416년의 일이다. 원종호는 그 횡성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 횡성에서 늙는다. 예순두 살이 된 2015년까지 원종호는 여러 번 전업(轉業)을 했다. 미술학도였다가 목장주가 되기도 했고 가축사료점주이기도 했다. 5공화국 시대 수입소 파동으로 목장 말아먹고서 사진가로 전업했고 지금은 고향 선산에 만든 미술관에 정주(定住)했으니 원종호는 미술관장이기도 하다. 미술관 이름은'미술관 자작나무숲'이다. 횡천을 횡성으로 바꾸게 만든 홍천 수타사를 순례하고 이름도 예쁜 아홉사리길 나목(裸木) 무리를 스치면 꿈꾸는 사내,원종호의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ㆍ홍천 수타사와 목어(木魚)
    홍천 동면에 있는 공작산은 높이가 887m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연꽃처럼 에워싼 분지에 수타사가 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 물이 매우 맑다. 원래 이름은 일월사(日月寺)였는데 1569년 스님네들이 수타사(水墮寺)로 이름을 바꿨다. 물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름을 바꾼 뒤로 해마다 계곡수에 사람이 빠져죽는 바람에 억겁 수명을 뜻하는 '壽陀寺'로 다시 개명했다. 1811년이라는 기록도 있고 1878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사이에 절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그 옆에 다시 지은 절이 지금의 수타사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에서 풍수원성당으로 가는 길은 설산(雪山)이었다. 다른 계절에는 평범했을 풍경도 눈이 덮이며 사람을 푸근하게 만드는 그림으로 변했다. /박종인 기자

    대개 조선의 사찰은 깊은 산중에 있는 법이다. 수타사 가는 길은 일절 비탈이 없다. 유치원 아이들도 소풍 다닐 수 있는 이 평평한 길과 숲에 2009년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5만평 숲은 수타사가 기부했다. 지금 그 생태숲에 2700종이 넘는 풀과 나무가 자란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생태숲 감상은 봄을 기다리기로 하자. 이 겨울날 수타사에 들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흥회루와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月印釋譜)다. 봉황문을 지나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흥회루다. 큰 예불을 올릴 때 사람들을 앉히던 건물이다. 세월이 흐르며 망가진 문과 기둥들은 일부 손을 봤지만 색 바랜 단청도 주춧돌도 옛것 그대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한가운데에 가만히 앉아본다. 실내 한쪽에 목어와 법고가 침묵한다. 범종, 운판, 목어, 법고를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고 한다. 과거와 현재, 날짐승과 물고기, 네발짐승을 계도하는 소리를 울리는 악기다. 목어를 유심히 바라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궤짝 위에 무섭게 생긴 목어가 떠서 대적광전을 바라본다. 열린 문에서 쏟아진 빛에 마루가 빛나고, 그 빛이 다시 목어를 은근히 비춘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고 경계를 한다고 해서 특히 중시하는 상징이다. 묵직하게 서 있는 기둥들도 인상적이거니와 그 한쪽에서 사주 경계를 하며 떠 있는 목어는 더더욱 인상적이다.
    수타사 흥회루에 있는 목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집, 바로 성보박물관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57년 봉황문 사천왕상 속에서 문서 두 권이 발견됐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과 18이었다. 석가모니 일대기를 한글로 적은 책이다. 월인석보를 대면하는 경험만으로도 수타사 방문은 의미가 크다. 목어와 보물 친견을 마치고 돌아나올 때, 반드시 봉황문 앞에서 뒤를 돌아볼 일이다. 예쁘게 단장한 봉황문 속으로 흥회루 낡은 현판과 그 뒤쪽 절 마당과 대적광전 계단까지 절집 공간을 한꺼번에 관통하는 초현실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그 느낌, 묘하다. ㆍ아홉사리고개
    그 옛날 인제군 상남에서 내촌으로 시집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해마다 친정으로 가려고 해도 길이 험해 아이를 업고서 갈 수가 없었다. 아이가 제 걸음을 떼는 나이가 되어서야 고개를 넘어 친정 방문을 했으니 그때 아이가 아홉 살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아홉사리가 되었다. 과거의 험로(險路)는 모두 자연이 보존돼 있는 관광지로 변했으니 지름길을 외면하고 굳이 아홉사리로를 택한 이유다. 여름과 가을에 흥청거렸던 물골안유원지에는 지금 벌거벗은 나무와 내촌천 줄기뿐이다. 맵싸한 겨울 공기가 숲과 강줄기 위를 맴돈다. 강에는 꽃을 다 벌린 갈대가 숲을 이뤘고 바위 위에서는 백로와 왜가리가 송사리 떼를 노려본다. 아홉사리길 끝 무렵에 아홉사리고개가 나온다. 누군가가 고개 옆에 자작나무를 심어놓았다. 양지바른 곳에서 건강하게 잘 자란 자작나무들은 지금 새하얗게 빛난다. 고개를 넘어 인제군 코앞에서 444번 지방도로 길을 바꾼다. 이제 자작나무 꿈을 꾸는 사내, 원종호를 만나러 간다. ㆍ미술관 자작나무숲과 원종호
    할아버지는 제헌의회 의원이었고 아버지는 교사였다. 아들 원종호는 미술학도였다. 그래서 대학도 관동대 미대에 들어갔는데, 1974년 3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니 근무하게 된 부대가 경기도 남양주 퇴계원 병참부대였다. 그때 퇴계원 너른 들판은 온통 얼룩덜룩한 젖소 목장이었다. 꿈을 꾸고 꿈을 따라 살던 원종호는 목장 주인이 되겠다고 작심했다. 선산이 있는 야산에 울타리를 치고 젖소 두 마리로 목장을 시작했다. 대학교는 때려치웠다.
    사진가 겸 미술관 관장 원종호.
    1980년대 새마을운동본부에서 호주 육우를 수입해 농민들에게 분양했다. 그 자리에서 되팔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분양가였다. 빚을 내서 소 40마리를 사고 나니 대한민국 육우 가격이 대폭락했다. 이름하여 수입소 파동이다. 원종호는 꿈에서 깨어나 사료가게 주인이 되었다. 목장은 방치했다. 원종호는 그 무렵 카메라를 사서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가 말했다. "대학 졸업도 못 하고 그림도 때려치웠고 목장도 망했다. 내 꼬라지가 이게 뭔가. 그래서 사진을 공부했다. 다른 꿈을 꾸게 된 거다." 늘 곤궁했지만 마침 아는 사람이 있어 필름값만큼은 걱정이 없었다. 그러다 1990년 백두산 가는 길에 자작나무숲을 스쳐갔다. 운명이었다. "그저 그 숲이 그렇게 마음에 꽂혔다. 이후로 전국에 자작나무 있다는 곳에는 다 가서 사진을 찍었다." 화가의 꿈,목장의 꿈은 자작나무의 꿈으로 진화했다. 촬영에서 끝나면 몽상가가 아니다. 산림청에서 자작나무 조림을 실험하던 1990년, 원종호는 키 30cm짜리 자작나무 묘목 1만2000주를 샀다. 1년생들이었다. 이 묘목들을 방치된 목장 야산 1만평에 심었다. 아무도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아내 김호선은 꿈만 꿔대는 남편을 외면했다. 그래서 인부도 쓰지 않고 혼자 다 심었다. 숲속에 나무로 집을 짓고 미술관을 지었다. 집 한 채에는 자작나무 찍은 작품을 걸었다.
    또 한 채에는 찻집을 차렸다. 또 한 채는 기획전을 하는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미술관은 '자작나무 숲'으로 명명됐다. 습하고 따뜻한 횡성 기후 속에 자작나무는 4000그루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 강인한 생명체가 지금 사람들을 부른다. 아내는 빙긋 웃으며 입을 다문다. 원종호는 그 자작나무 사이사이에 '잡초'라 통칭되는 식물들을 심고 가꾼다.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우니까." 지금 미술관 자작나무숲으로 가면 혹독한 기후를 견뎌낸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나무들에 집착한 꿈꾸는 사내를 만날 수 있고 그가 창조한 자작나무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 풍수원으로 간다. ㆍ겨울길의 끝, 풍수원성당
    길가에 솟아 있는 야산들은 모두 흰 눈을 덮어쓰고 있다. 산등성이 나목들은 마치 붓으로 그린 듯 정교하게 눈을 비집고 솟아 있다. 그 끝에 풍수원이 있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풍수원으로 천주교도들이 탄압을 피해 숨어들었다.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30년 뒤 정규하 신부가 이곳에 부임해 성당을 지었다. 1909년 풍수원성당이 완공됐다. 조선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모양은 서울 약현성당과 쌍둥이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적요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수타사 목어의 경계심, 미술관 사내의 환(幻)이 겨울 여정을 함께한 것이었다.
    [겨울 횡성 여행수첩]
    볼거리(내비게이션 검색어도 동일)
    : 1.수타사 절 입구 왼편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봉황문 사천왕상과 '수타사' 현판이 있는 흥회루, 그리고 성보박물관 월인석보를 반드시 볼 것. www.sutasa.org, (033)436-6611 2.미술관 자작나무숲 눈이 내리는 날 더 좋은 공간.잎 다 떨군 자작나무숲,가지가 붉고 노란 말채 군락이 볼거리. 언덕에 있는 전시관에서 원종호의 작품을 꼭 보도록 한다. 입장료 2만원에는 찻집 마실거리 포함. www.jjsoup.com, (033)342-6833. 수요일 휴관. 3.풍수원성당 길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5분. 아담한 성당에 너른 마당. 낭만적이고 성스럽다. www.pungsuwon.org 4.아홉사리고개 고개에 조성돼 있는 작은 자작나무숲이 포인트. 길섶에 차를 대고 커피를 마실 공간이 있다. 먹거리: 홍천 화로구이 홍천 명물.맵게 양념한 돼지고기를 숯불 직화로 구워 먹는다. 양지말화로구이 추천. 1인분 1만2000원(2인분 이상). 붙어 있는 찻집 커피도 추천. www.yangjimal.co.kr, (033)435-1555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