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감싸는 새벽별
於四年壹定中 誦大悲呪百萬遍 “사년을 정하고 대비주를 백만 편을 외웠다마음의
心眼澄明 口辯無礙 눈이 맑고 말을 하는데 걸림이 없어
塵沙佛刹 星羅於胸襟 하나하나가 불찰로 가슴에 미묘 법문이 별처럼 빛나고
微妙法門 甁瀉於口海 입으로는 바닷물을 쏟아내는 듯 했으며
行希而無碍 圓融而自在 어딜 가도 걸림이 없이 원만하고 자재로워
重重疊疊 如夏雲之起空 거듭거듭 쌓이는 것이 여름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듯 하고
密密明明 如曉星之帶月 은근히 밝아지는 것이 새벽 별이 달을 감싸는 것 같았다.”
선암사에 모셔진 금암천여(錦庵天如, 1794~1878) 선사 진영에 실린 영찬이다.
찬자는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이다.
초의스님은 1864년 입하(立夏)를 앞두고 대흥사 보련각에서 금여스님의 찬문을 지었다.
1864년은 금암스님이 칠순이 되던 해로 제자들은 스승의 진영을 제작하기 위한 찬문을 초의스님에게 받았다.
초의스님은 찬문을 짓게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갑자년(1864) 늦은 봄 땅 위로 솟은 금탑이 있어 개금하러 갔을 때 (금암스님) 문하인 설암덕언(雪岩德彦)이 찬을 청하였다.
내가 손이 둔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 고사하니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다시 부탁하고 가기에 힘 있게 찬을 지으니 장황하다. (이에) 표지를 감싸 보낸다.”
진영의 주인공 금암스님은 19세기를 대표하는 불화승(佛畫僧)으로 스님이 그린 불화는 지금도 호남과 영남의 수많은 사찰에 모셔져 있다.
스님은 <법화경>의 “칠보채화 백복엄신 필경회향 실개성불(七寶彩畵 百福嚴身 畢竟回向 悉皆成佛)”
구절에서 대비이제지행(大悲利濟之行)을 깨닫고 금파도익(金波道益 1801~1828 활동)에게 불화를 배웠으며 천불개금을 평생 서원으로 삼아 임종 직전까지 불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화승으로 활동하면서도 스님은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세에 금수암의 관음상 앞에서 200일간 정진하고 일출암터에서는 10년간 수행했다.
또한 46세 때에는 운수암에서 4년 동안 대비주 100만주를 외고 삼매 중 가타송(伽陀誦) 1편을 짓기도 하였다.
운수암 대비주 수행은 금암스님을 화승 그 이상의 면모를 갖춘 선사로서의 위상을 높여 주었고 초의스님의 영찬으로 고스란히 승화됐다.
☞ Vol 3153 ☜
■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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