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타난 부루나”
以如幻身 現如幻世界
헛된 몸으로 헛된 세상에 나타나
設如幻法 度如幻衆生
헛된 법을 설하고 헛된 중생을 제도하였다
| 선암사에 모셔진 환월시헌(幻月時憲,1819~1881) 선사 진영에 실린 경운원기(擎雲元奇,1852~1936)의
영찬이다.
환월스님은 순천 출신으로 14세에 선암사의 영숙장노(永淑長老)에게 머리를 깎고 계봉심정(溪峰心淨)스님
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계봉스님에 이어 상월새봉-용담조관-혜암윤장-눌암식활의 법맥을 계승해 서산휴정의 11세손(世孫)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조계산의 많은 스님들이 문중을 불문하고 침명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듯이 환월스님 역시
침명스님에게 경(經)과 선(禪)을 배웠다.
33세에는 패엽사 월출암에서 3년간 바깥출입을 금하고 <법화경> 강독을 일과삼아 정진했다.
스님은 <화엄경> 한부를 7일 이내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교학에 밝았으며 특히 법화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 세상에서는 “부루나(富樓那)가 다시 나타났다”고 칭송하였다.
진영에 찬문을 쓴 경운스님은 환월스님의 제자이다.
경운스님은 17세에 연곡사 환월스님에게 출가했다.
30세에 경봉스님의 강석(講席)을 이어받아 침명한성-함명태선-경봉익운에 이어 선암사의 강학을 꽃
피었다.
스님은 명필로 이름이 높아 29세에 명성황후 민비의 발원으로 통도사에서 금자법화경을 서사하였고
45세에는 선암사에서 6년 동안 화엄경 전질을 필사했다.
경전을 서사할 때에는 한 글자를 쓸 때마다 한번 절하는 일자일배(一字一拜) 수행법을 행하였다.
환월스님 진영의 영찬은 경운스님이 학덕이 무르익고 명필로 이름을 떨치던 29살에 짓고 쓴 것이다.
환월스님은 특이하게 진영에 생전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환월당대종사(幻月堂大宗師)’라는 법호가 적힌 위패가 표현되어 있고 위패 주변에는 평소 탐독했던
법화경 7권과 교학을 상징하는 지필묵,길상함을 의미하는 영지를 문 사슴과 잉어가 그려져 있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는 화악지탁(1750~1839)스님이 진영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을 읽고‘華嶽(화악)’
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진영을 대신토록 하였다.
이는 법호만으로도 스님의 삶과 사상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운스님도 형상에 구애받지 않고 환월스님의‘幻’에 기대어 허상처럼 오고 가신 듯하지만 스님의 설법
이야말로 진정한 중생 제도였음을 선명한 필묵을 통해 남기고자 하였다.
☞ Vol 3151 ☜
■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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