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동남아 산책

싱가포르가 부러웠던 미얀마는 왜 최빈국이 됐나?

浮萍草 2015. 11. 25. 10:00
    얀마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동남아에서 두 번째로 국토가 넓은 나라입니다. 동남아에서도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지요. 중국,태국,라오스,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인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인구는 5500만명 수준으로 대부분은 버마족(약 70%)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90%가 불교를 믿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소수민족이자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이 핍박을 받는 형편입니다.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인 1950년대에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동남아 선두주자로 기대 받았습니다. 그때는 싱가포르 국부(國父) 리콴유가“머지않아 버마(미얀마 옛이름)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국민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62 쿠데타로 네윈이 집권하면서 최빈국으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재자들은 1987년 암거래에 타격을 준다며 화폐 무효화 조치를 내리거나, 2005년 국민들도 모르게 기습적으로 수도를 옮기는(양곤→네피도) 등 비상식적인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를 두고 ‘독재자들이 점성술사 말대로 정치를 한다’는 소리가 국민들 사이에서 떠돌기도 했지요. 미얀마 군부는 약 반세기간 유지됐습니다. 1988년 8월 8일 이른바 ‘8888’운동이라 불리는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전개됐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도 이때 처음 정치에 발을 들였습니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했지만,군부가 이를 무효화하면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됐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군부는 자체적으로‘7단계 민주화 로드맵’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퇴역군인을 주축으로 한 민간 정부가 2011년 출범했습니다. 이후 퇴역군인 출신 테인 세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하면서 연평균 7%의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한때 미얀마는 북한보다 못살았지만, 지금은 북한은 물론 캄보디아를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25년만에 열린 자유보통 선거에서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대승하면서,건국 이래 최초의 민주화 의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세계는 미얀마를 가리켜 ‘아시아에서 최후로 남은 미개척지’로 부릅니다.
           김형원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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