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동남아 산책

일본, 패전 확정되자 위안부를 간호부로 '신분 세탁'

浮萍草 2015. 11. 7. 07:00
    “일본군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육군병원이었다. 
    그 곳에는 이미 우리 같은 여자들이 300명 정도 와 있었다. 
    일본군인이 호박을 갖다 놓고 사람 몸이라고 생각하고 주사를 놓아보라고 가르쳤고,병원 청소도 시켰다. 병원에서는 걸핏하면 피가 모자라는 환자를 위해 내 피를 
    뽑았다. 
    피를 뽑히면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고 어지러웠다.” 
    동남아시아 곳곳을 끌려 다니며 성노예(위안부) 생활을 했던 김복동(89) 할머니의 증언이다.
    일본군 총칼에 강제로 끌려온 여성들은 1평(약 3.3㎡) 남짓한,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방 안에서 열악한 생활을 해야 했다. /김형원 특파원

    군(軍)병원에 동원됐다는 위안부 증언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팔렘방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고(故) 이후남(가명) 할머니 할머니의 최종보직 또한 일본군 남방 제9육군병원 임시간호부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펴낸 증언록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에서 이 할머니는“간호원같이 십자(十字)완장 찼고요. 간호원으로 위장한 거죠. 위안소 주인 남자 2명도 같이 있었어요”라고 진술했다. 지난 6월 4일 김 할머니가 강제 동원됐던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제9육군병원을 찾았다. 일본이 물러가고, 네덜란드도 식민지배를 포기하면서 인도네시아 육군이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용도는 여전히 군인병원이었다. 팔렘방 사람들은 병원을 ‘벤뗑(요새)병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정식 명칭은 아까가니 병원이다. 녹색 슬레이트 지붕이 가분수(假分數)처럼 컸다. 입구로 들어서자 열대성 호우가 쏟아졌다. 가운데를 네모난 도넛처럼 뚫어 정원으로 쓰고 있었다. “우두두두” 빗소리가 폭 1m짜리 회랑(回廊)을 타고 증폭됐다. 우리 정부의 조사에서 인도네시아군 장교 출신 압둘 아지즈씨는“병원 근처(꾸본두꾸 지역)에 위안소에는 한국·인도네시아 여성이 있었는데,일본군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병원은 70년 이상 개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나무의자 위에 배를 까고 누운 노인, 질밥(이슬람 여성의복)으로 온 몸을 휘감은 여성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직원’들은 허리춤에 권총을 찼다. 병원관계자는“예전에 일본군이 건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조선인 여성들이 간호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인 여성의 자취는 일본군 공문서에 남아있다. 일본군 유수(留守·외지근무) 명부에 따르면 패전 일주일 만인 8월 22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제9육군병원은 조선인 여성 77명을 임시 간호부 등으로 채용했다. 같은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메단에 있는 육군병원도 동시다발적으로 조선인 여성 224명의 이름을 병원 명단에 등록했다. 이렇게 벼락치기로 병원 소속이 된 여성들은 ‘인스턴트 간호부’라 불렸다. 간호부는 현재의 간호사를 지칭하는 당시 명칭이다. 의료 지식이 없는 위안부는 어째서 인스턴트 간호부가 됐을까. 당사자들은 ‘위안부 은폐’를 위한 일본군의 꼼수로 봤다. 필리핀 마닐라 근교 육군병원에 있었던 고(故) 손판임 할머니는“우리의 신분(위안부)이 탄로 나면 일본의 체면이 깎일 거라 염려해서 간호부로 만들어 버린 것” 이라고 말했다. “전쟁 끝날 때쯤 간호복 입으라고 해서 입었어. 어디서 그런 거를 가오는가 몰라. 살라고 발광이라. (위안소) 주인들이 입으라 하면서, 이걸 안 입으면 안 된다고. 우리가 몸이나 팔고 그런 거 하러 와서 있는 줄 알면 안 된다 하는 거라.”인도네시아 발리파판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고(故) 강도아 할머니 정부 조사 진술이다. 당시 연합군은“주사를 놓아 보라”면서 간호복을 입은 여성들이 진짜 간호사인지 시험했다고 한다. 당시 강 할머니의 위안부 신분은 들통나지 않았다. 일본군이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여성들을 맨 앞 줄에 세웠기 때문이다. 강 할머니는 “그 사람들(연합군) 보기에 다급해 놓으니까 간호복을 입힌 것이지, 실제 병원에서 일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군은 강도아 할머니의 신분을 자카르타 제5 육군병원 소속으로 올렸다.
           김형원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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