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동남아 산책

연무(煙霧) 속에 비행기가 착륙못하는 이유는

浮萍草 2015. 11. 14. 07:30
    '시계(視界)제로’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사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그런 상황입니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무(煙霧)가 대기를 뒤덮은 까닭입니다.
    지난달 11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주(州) 출장길에서 연무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사방이 불투명한 연기로 가득했고 활주로를 찾지 못한 비행기는 상공을 빙빙 맴돌았습니다.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산불이 만든 연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신화통신

    승무원이“해마다 건기(乾期)가 되면 피어오르는 연무이니 동요하지 말라”고 설명했지만,일부 승객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좌우측 모든 비행기 창(窓)이 서리가 낀 것처럼 부옇게 변해,천지사방이 분간되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공항에 착륙하니 이제는 탄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신현동 코린도 조림본부 대리는“한번 산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숲이 광대해서,소방관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ㆍ 최대 15조원 경제피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사상 최악의 연무
    올해 연무는 인도네시아에 막대한 경제피해를 안겼다는 것이 전문가들 관측입니다. 항공기 운항 차질,휴교,교통사고 등 연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계산한 것이지요. 벌써 호흡기 환자가 13만명을 넘었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에서 호스에서 물을 뿜어내 불을 진화하고 있다. /블룸버그

    인도네시아에 있는 국제산림연구소(International Forestry Research estimates)는“연무로 인한 산림감소,농작물 생산저하, 관광산업 타격과 의료비용 지출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피해가 미화 140억 달러(약 1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비용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바람을 타고 넘어간 연무는 인접국가와 외교적 갈등마저 불러올 조짐입니다. 지난해 싱가포르 환경장관이“인도네시아가 주변국가 국민의 안전에는 무관심하다”며 비난한데 이어 올해는 태국 외무장관이“인도네시아 당국이 산불을 통제하기 위해 조치를 강화하라”고 나섰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총리가 나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릴 정도로 연무문제는 심각하게 주변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산불이 일으킨 연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ㆍ광활한 숲, 토탄층 발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기후 ”집중호우 외에는 해결책 없어”
    재앙에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연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97년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과 수마트라 등지에서 발생한 그 당시 ‘사상 최악의 연무’ 이래, 건기가 찾아오는 매해 6~9월이 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학원강사 리즈키 아딧야(32)씨는 “연무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발표를 믿는 인도네시아 사람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형원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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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뒤덮은 연무에 학생들은 기우제 지내
    
    실제 주 인도네시아 대사관 이상익 임무관은“동남아시아 연무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토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것의 9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데 열대림에 한번 불이 붙으면 인력(人力)이 번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도네시아 남부 수마트라의 극심한 연무로 소방관이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고 진화작업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

    이유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토질에 있습니다. 이 임무관은“발화물질이 퇴적된 토탄층(土炭層)에서는 지하 5~6m 아래에서 불이 번지기 때문에,땅 속 깊숙이 적시는 집중호우가 아니고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고 말했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건기에 산불이 나면 반년 뒤인 우기에나 꺼진다”는 웃지 못할 농담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수마트라 팔렘방시(市)에서는 학생들이 나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7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팔렘방시(市)에서 학생들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ㆍ국제사회 공조…동남아 괴롭히는 연무 잡아낼 수 있을까?
    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경찰청은 산불을 지른 혐의로 팜유농장 기업인 등 7명을 체포했습니다. 농장개간 등을 이유로 밀림에 불을 놓는 방화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겁니다. 방화 용의자 가운데는 인도네시아 최대 펄프·제지 회사인 아시아펄프제지(APP) 고위 임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고의로 산불을 낸 것으로 확인된 기업들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성사진에서 확인된 산불 발생지점만 1000여곳이 넘어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입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연무는 해결하는데 장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우리가 연무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족히 3년은 걸릴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연무가 극심해지자, 배 한 척이 낮에도 조명등을 켠 채로 운항하고 있다. /신화통신

    이런 분위기에서 연무를 잡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는 주목할 만합니다. 그간 “우리 힘으로 산불을 잡을 수 있다”던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웃국가들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연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한 이웃국가 싱가포르는 공중에서 물폭탄 투하용(用) 항공기를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우기(雨期)가 오기 전에 인공강우를 시도한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또 말레이시아, 일본, 중국, 호주 등과 산불 진화 문제를 협의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 공조가 수십년간 동남아시아를 괴롭히던 연무를 잡아낼 수 있을까요. 집중호우가 내리는 우기는 11월부터 시작됩니다.
           김형원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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