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2 함명태선(涵溟太先)

浮萍草 2015. 10. 31. 10:30
    “주장자 끝에 눈이 있다”
    
    戱自題 웃으며 스스로 찬한다.
    昔在和州 五百年 과거 화주에 있으면서 오백년을
    天生眞覺 唱吾禪 타고난 진각국사는 우리의 선을 주창했으나
    如今地老 無靈氣 지금 이 땅의 늙은이는 영험이 없어 
    一箇函溟 大可憐 홀로인 함명이 참으로 불쌍하구나. 
    
    氣宇堂堂 棒頭有眼  “기세는 당당하고 주장자 끝에 눈이 있다.
    取彼溟渤 擬議便差  검푸른 바다 물결치니 생각과는 같지 않으나
    如其心 奮無畏音  모습은 마음과 같아 두려움 없는 말을 한다. 
    納之一函 潭北湘南  함명을 거두니 담의 북쪽이요 상의 남쪽이다.”
    - 通政大夫 左承旨 李建昌 題

    암사에 모셔져 있는 함명태선(涵溟太先, 1824~1902) 선사 진영에 실린 스님의 자찬과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영찬이다. 함명스님은 14세에 만연사의 풍곡덕인(豊谷德仁)스님에게 출가해 편양문중의 법맥을 계승하는 한편 선암사 대승암의 침명스님에게 삼장(三藏)을 배워 전강을 받았다. 이후 선암사 북암과 남암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였고,스님의 법맥과 강맥은 경붕익운(景鵬益運,1836~1915)-경운원기(擎雲元奇,1852~1936)-금봉병연(錦峰秉演, 1869~1916)에게 사자상승하며 근세까지 이어졌다. 함명스님의 추모사업은 금봉스님에 의해 적극적으로 진행됐다. 금봉스님은 1914년에 평소 친분 있던 여규형(呂圭亨, 1848~1921)에게 글을 부탁해 함명스님의 비(碑)를 선암사에 세웠다. 비슷한 시기 함명스님 진영에는 이건창의 영찬이 더해졌다. 이건창은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과 더불어 한말 3대 문장가로 불렸으며 이 글은 좌승지(左承旨)였던 1891년에 지은 것이다. 선암사 스님들과 이건창은 광양 출신이자 구례에서 활동했던 황현에 의해 돈독해졌을 것이다. 황현은 20대에 서울로 올라가 이건창,김택영과 친분을 쌓았고 구례로 귀향한 후 그를 중심으로 선암사 경붕·금봉스님과 이건창의 교우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비록 이건창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함명스님을 비롯해 스승 침명스님,후손인 경붕스님과 경운스님의 진영에 그의 찬문이 실리면서 4대에 걸친 선암사 강백과의 인연을 후세에 길이 남겼다.
    ☞ 불교신문 Vol 3149 ☜      
    해제ㆍ설명= 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