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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이병철 회장과 신격호 회장의 불편했던 감정을 풀어낸 자손들

浮萍草 2015. 11. 5. 12:40
    성 창업 회장과 롯데 창업 회장과의 ‘앙금’이 3대와 2대에 와서 풀리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삼성그룹이 석유화학 분야를 롯데그룹에 매각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창업 3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창업 2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만나 3조원대의 ‘빅딜’을 이뤄냈다. 
    이병철(1987년 작고) 삼성 그룹 창업주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서울 소공동 요지를 놓고 격돌,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롯데 호텔의 부지는 원래 반도호텔이 있었던 곳으로 이병철 회장이 오랫동안 눈독을 들였던 땅이었다.
    그러나 신격호 회장이 1973년 반도호텔을 매입하면서 두 창업주간 앙금이 생겨났다. 
    인근에 조선호텔과 신세계 백화점을 갖고 있던 이 회장으로서는 신격호 회장에게 일격을 당한 셈이다. 
    소공동 일대를 삼성 타운으로 만들려던 계획 역시 물거품이 됐다. 
    이후 이병철 회장은 신격호 회장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의 만남도 거의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만나 빅딜을 성사시킴으로써 선대의 불편했던 감정도 사그러졌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고 있다.
    이병철 삼성 설립자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조선일보 DB

    특히 이번에 롯데에 넘긴 삼성정밀화학(한국비료 전신)은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에겐 아주 의미 있는 회사였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애증’의 회사로 불리기까지 한다.어쩌면 창업주의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적통을 잇도록 한 계기를 만들어 준 회사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오늘의 이재용 부회장을 만든 회사였다고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5·16’으로 집권한 당시 군부는 모든 것을 경제살리기에 집중했다.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다. 재벌들에게도 이러한 국가정책에 동참하기를 강요했다. 최대 재벌이었던 이병철 회장은 비료공장 건설을 맡았다. 1964년 이 회장은 세계 최대 비료공장을 짓기로 작정하고 ‘한국비료공업’을 설립,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 회장은 자서전인 ‘호암자전’에 “비료의 자급자족이야말로 농촌의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라고 썼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비료공장 설립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천명할 정도였다. 실제로 1965년 한국비료공업은 일본 화학회사 미쓰이로부터 488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받았고 차관에 대한 지급 보증은 정부가 섰다. 공장을 거의 완공할 무렵 문제가 터지고 만다.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아려진 ‘한비사건’이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건설 자재로 꾸며 밀수를 하다 부산 세관에 발각됐다. 사카린은 비싼 설탕 대신 단 맛을 내는데 쓰이던 주요 원료였다. 이 사건은 ‘한국비료공업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불렸다. 정치권과 언론의 질타가 봇물을 이뤘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한국비료공업 이창희(1991년 사망) 상무가 구속됐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삼성그룹은 한국비료공업의 주식 51%를 국가에 헌납했다. 한국비료공업은 이후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공기업 형태로 경영됐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후임으로 장남인 이맹희(2015년 타계) 회장을 지명했다. 이맹희 회장으로의 경영권 이양은 자연스런 것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이맹희 회장의 ‘대권’은 오래가지 못했다.경영방식을 놓고 사사건건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부딪혔다.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병철 회장은 장남을 경영에서 배제하고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후 장남인 이맹희 회장은 한번도 부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한비사건’으로 인해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물려받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회사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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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의 빅딜
    
    정부에서 운영하던 한국비료는 지난 1994년 민영화가 이뤄졌다.당시 대림그룹과 동부그룹 등에서 군침을 흘렸다. 
    특히 현금 유동성이 풍부했던 동부그룹은 상당한 관심을 가졌으나 막판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삼성에서 인수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한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다시 한국비료를 품에 안았다. 
    삼성은 인수하자마자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하고 비료생산에서 첨단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건희 회장이 한비를 인수할 당시 삼성 그룹은 거의 혁명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1년전인 1993년 6월 7일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과 주요 간부를 불러 모아 “나부터 바꾸자. 마누라, 
    자식만 빼놓고 다 한번 바꿔보자”는 말로 요약되는 신경영 선언을 선포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질 위주의 경영'으로 기업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삼성의 경영 전 부문에 걸쳐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였다. 
    같은 해 7월 삼성그룹은 모든 계열사에 조기출근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의 근무 시간은 오전 7시~오후 4시였다.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가져다 준 혁명적 발상이다. 
    이 선언으로 삼성은 대 변혁이 일어났다.제일제당과 신세계백화점,전주제지를 가족들에게 분가해 준 것도 그때였다. 
    자동차 산업으로의 진출 등 지금까지의 삼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회장의 애증이 서린 한국비료를 인수하면서 많은 상념에 잡혀 있었다. 
    ‘석유화학’분야가 삼성의 ‘신수종’사업으로 자리잡을 것임에 방점을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3대인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0월30일을 기해‘석유화학’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삼성종합화학과 방위산업 분야를 한화그룹에 넘긴데 이어 이번에 롯데그룹에 나머지 화학분야를 넘김으로써 삼성에서 석유화학 분야는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삼성 그룹의 이와같은 선택에 대해 재계에선 대체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전자와 전자소재, 금융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초 일류 기업으로 계속 나가겠다는 것이 ‘이재용식 삼성’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롯데그룹과의 ‘빅딜’에선 밑지지 않은 장사를 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롯데 그룹은 3조원에 이르는 인수가격을 삼성그룹에 줘야한다. 
    롯데그룹 인수합병(M&A) 역사상 가장 대형 거래다. 삼성으로서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전자 전지 등 필요한 부분에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 
    물론 롯데그룹 역시 전자 전기 바이오 산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돼 긍극적으로는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선일보 DB

    이번 빅딜에 눈길을 끄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과의 관계다. 나이는 13살 차이로 신 회장이 위지만 두 사람은 상당히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일본 유학 경험이 있어 의사 소통 등 돈독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주변에선 얘기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 회장의 껄끄러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의 ‘소공동 삼성타운’의 꿈은 신격호 회장 때문에 깨졌으나 후대에선 돈독한 관계가 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과 신격호 회장은 백화점과 호텔 등 유통과 서비스 업종에 부딪히면서 냉랭한 관계는 지속되었다. 신격호 회장이 국내 재계 인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은 정주영(2001년 작고) 현대그룹 창업주였다. 정 회장은 매년 주한 외교 사절을 위한 신년 하례회를 롯데호텔에서 개최할 때 항상 상석에 신격호 회장을 초대해 자리를 같이했다. 신 총괄회장은 재계에서 가장 친한 분으로 정주영 회장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끈끈했다. 그러나 2세와 3세 경영인으로 이어지면서 창업 회장간의 어색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이번 빅딜을 위해 신동빈 회장이 직접 이재용 회장을 만나 성사시켰다는 후문이 있다. 신 회장은 형인 신동주 부회장과의 송사 등 내부의 사정이 있음에도 빅딜을 성사시킴으로써‘경영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한 셈이 됐고,이재용 부회장은 화학사업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서로의 이해가 맞았는지 모른다. 창업주의 애증이 서린 삼성정밀화학(한국비료 전신)을 롯데 그룹에 넘긴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형제간 갈등을 경영 능력으로 보여주려고 한 신동빈 회장의 결단이 나은가에 대한 판단은 한참후에 나올 것이다. 창업 회장간의 앙금도 씻어낸 이번 빅딜이 우리 경제계에 어떤 여파를 몰고 올 것인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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