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내려올 때 보인다

4 김훈

浮萍草 2015. 10. 7. 07:00
    주장이 판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절제된 언어로 각광받은 소설가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내가 입사하던 1980년대 초 신문 산업은 호황기였다. 
    문제는 언론 자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군사 독재하에서 우리는 의견(opinion)은 줄이고 사실(fact)만 보도할 것을 배웠다. 
    예컨대 그녀가 “아름답다”는 말은 의견이고 “미스코리아 출신”이란 말은 사실이다. 
    선배들은 흔히 이렇게 주문했다.
    “사설 쓰듯 하지 말고 스케치하듯 보여줘(Show, Don’t tell).”
    기자가 심판자가 돼 상황을 말하거나 의미 부여 하지 말고 관찰자 입장에서 그대로 묘사해주고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게끔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김훈의 글을 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그는 기자라기보다 대(大)문장가 같았다. 
    문학을 주제로 한 그의 글은 비교적 자유롭게 숨을 쉬며 원초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1990년대 민주화가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의 언어는 고삐 풀린 말처럼 자유로워졌다. 온갖 주의·주장이 난무하고 과거 하지 못했던 날 선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기관도 특유의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주장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정파나 세력들은 이런 언론을 이용했다. 한국일보를 나온 김훈은 프리랜서 작가,주간지 편집장,일간지 간부,사건 기자 등을 전전했다. 그러나 그의 글은 달라져 갔다. 장황한 자기 목소리 대신, 감정은 절제돼 드라이해졌고, 상황(사실)을 카메라로 비추듯 간결하게 보여주기만 했다. 김훈을 기자가 아닌 소설가로 각인시켜 준 걸작 『칼의 노래』(2001년)도 마찬가지다. 수사적(修辭的) 장치는 전혀 동원하지 않고 주어와 동사, 문장의 뼈다귀만 갖고 썼다. 기자가 사실 보도하듯 말이다. 왜 김훈은 ‘언론 자유’가 넘쳐 나는 시대에 도리어 혹독한 ‘자기 검열’을 하는가? 그의 작품들이 노무현 정권 들어 각광을 받게 된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 시절에는 사실보다 의견, 객관보다 주관, 이성(理性)보다 감정(感情)의 언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훈의 글은 정반대였다. 그와는 고등학교·대학 선후배 관계로 공·사석에서 가끔 만났다. 2004년께인가 그는 말했다. “요즘 글쓰기가 어렵고, 신문·저널 읽기가 고통스럽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의견을 사실처럼, 사실을 의견처럼 말한다.” 술이 얼큰히 들어가면 김훈은 그 큰 눈을 똑바로 뜨고 후배 기자들을 질책했다.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신념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보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나는 그가 기자들에게 보낸 고언(苦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에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어라. 이게 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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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草浮
    印萍

    작업실 벽에 씌인 '필일오(必日五)'는 무슨 뜻?
    
    ㆍ“입을 닫으니 마음이 들린다”
    소설가 김훈. /조선일보 DB
    2000년대 중반 신문사를 나와 대학에서 가르칠 때,나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재인‘뉴스 보도(News Reporting and Writing)’에서 ‘Show, Don’t tell’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이다….” 그러나 ‘Show, Don’t tell’이 단순히 글 쓰는 기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강의 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나보다 한 세대 어린 젊은이들과 진정한 소통은‘내가 말할 때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줄 때’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김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글처럼 단순하고 간결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기도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혼자 글을 쓰고 지내며 주말에는 일산 집에 머무른다. 작년 10월 화창한 어느 날 안산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거기에는 일체의 장식이나 번잡함,군더더기가 없었다. 책상,의자,소형 라디오와 오디오,전기 스탠드 2개,그리고 서류함으로 쓰이는 중국집 철가방이 전부다. 책은 새우리말큰사전(상·하), 옥편, 이순신의 『난중일기』. 흔한 노트북 컴퓨터도 없고 연필깎이·필통·지우개·원고지가 작업 도구의 전부다. 그는 하루 세 시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홀로 새·노을·바다·산야를 구경하며 돌아다닌다고 했다. 작업실 벽에는 하루에 원고지 다섯 장은 꼭 쓰자는 의미에서‘필일오(必日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이제 김훈 글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그는 다만 보여 줄 뿐이다. 그러나 독자는 무언(無言)의 울림을 안다. 어쩌면 ‘Show, Don’t tell’이야말로 온갖 주장과 위선(僞善)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인생의 경구(警句)가 아닐까. 나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나 쉽지 않다. 어느새 비판하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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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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