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내려올 때 보인다

6 정명훈

浮萍草 2015. 10. 14. 08:00
    지휘자 정명훈 인생의 4가지 기적
    
    2011년 정부 주최 신년음악회가 1월 4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이던 나는 이 행사를 진두지휘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공연을 맡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정명훈씨가 급히 만나자는 것이었다. 
    지휘자 대기실에 가보니 정씨가 이날 총연출을 맡은 국립오페라단 관계자에게 무대에 설치된 외벽 세트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단측은“그냥 하자”고 우겼다. 결국 내가 결론을 내려야 했다.
    
    ‘오늘 행사는 음악회다. 그렇다면 지휘자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뒤면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 VIP들이 총출동한다. 현장 관계자를 쳐다보았다. “30분 내 철거 가능합니까?”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철거하세요.”
    2011년 1월 4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음악회가 끝나고 기립 인사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신년 첫 대형 대통령 행사다 보니 경황이 없었다. 곳곳에서 경호와 의전 간 마찰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손님 입장에서 독려했다. 오후 8시 음악회 개막을 30분 앞둔 7시30분쯤 정씨가 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늘 마지막 곡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인데 독일어 가사를 한국말로 옮긴 스크린 자막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공연할 때 서서히 내려주면 관중이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왜 진작 요청하지 않으셨습니까?” “과거에도 이런 요청을 했는데 안 들어주더군요. 비서관님이면 들어주실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겁니다.” 순간 그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즉시 예술의 전당 관계자를 불렀다. “30분 내 되겠습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오후 8시 애국가를 필두로 시작된 신년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결혼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내가 정명훈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봄이었다.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막 취임한 정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5월 일본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지휘자로서 36세(1989년)에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발탁돼 세계적 음악가 반열에 올랐던 그는 의외로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나 정도 재주를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천재들이 한 발자국씩 성큼성큼 딛고 나간다면 나는 굉장히 오래 걸려서 그 뒤를 쫓아갑니다.” 그는 ‘노력파’였다. 잠시도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고, 인터뷰는 리허설 도중 휴식시간이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했다. 어렸을 적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피아노 음 하나 틀리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러나 20대 들어 지휘자로 전향, 자신보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생각하며 어둡고 고독한 음악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결혼이 더해지면서 그의 인생은 날개를 달았다 그는 인생에서 모두 네 번의 ‘기적’이 있었는데, 아내와의 결혼과 세 아들을 낳았을 때라고 말했다(세상에!). 그는 가족의 ‘조수’ ‘심부름꾼’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났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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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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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사생활은?
    명훈씨와 그때 만난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서울시향은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아시아에선 일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휘자 정씨의 노력이 컸다. 
    그는‘독불장군’이란 비판을 듣는다. 
    정·재계 실력자들과의 교분이나 사교활동을 좋아하지 않으며,학연·지연 등 인맥도 배제한다. 
    그러나 단원 대부분은 그가 어떤 이해관계나 사심(私心)을 넘어 오로지 음악의 완성도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안다.
    정명훈씨가 프랑스 프로방스 자택 마당에서 셋째 아들 민(바이올리니스트)과 손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식탁에는 풋고추와 어린 홍당무 등이 놓여져 있다. /정명훈

    단원들은 정씨의 지시가 “단순·명확하다”고 말한다. 정씨도 동의한다. “내 일은 호텔 포터(porter·짐꾼)와 비슷합니다. 내 짐을 들고 방까지 잘 옮겨주는 겁니다.” 정명훈씨의 시간 관리는 유명하다. 그의 스케줄을 담당하는 직원은“거의 분(分) 단위로 시간을 쓴다”고 했다. 마치 바쁜 사업가처럼 자동차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고를 받거나 사무를 처리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가. “천재들은 어마어마한 재주가 있어요. 내가 100번쯤 봐야 외울 수 있는 악보를 단 몇 분 안에 해치웁니다. 이러니 평생 노력할 수밖에 없죠.” “순수해지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그의 바깥 삶이 ‘알레그로(allegro·빠르게)’라면 안쪽 삶은 그야말로 ‘안단테(andante·느리게)’다. 퇴근하면 보통 집으로 쏜살같이 간다. 그저 집에서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쉬는 것이다. 그는 요리책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을 펴낼 정도로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휴일이나 휴가 때도 거창한 것이 없다. “집에서의 일과는 그 이상 심플할 수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아침 먹고…다시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또 공부하고 다시 점심 해먹고 걷다가 공부하죠. 그게 행복해요.”

    스스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언젠가 그는 “살아오면서 항상 보이지 않는 손과 힘에 끌려오는 삶을 지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세계적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을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꼽았다. “줄리니는 성직자 같고 메시앙은 성인 같은 분입니다. 그분들같이 겸손해지겠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 목표입니다.” 그 겸손함을 음악으로 연결시킨다면 ‘순수함’이라고 했다. “순수하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종합해볼 때 정명훈씨의 삶의 키워드는 ‘단순함’이었다. 이 복잡한 시대, 너도나도 빨리빨리 쫓고 쫓기며 온갖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는 ‘번아웃(Burnout·탈진증후군)’ 세상에서 그는 자신을 지키는 비법으로 ‘단순한 삶 (Simple Life)’을 택했다. 평소 그렇게 바쁘게 살지만 그는 휴대전화도, e메일도 이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맨’이다. 외국에 있는 그와 연락하려면 호텔로 국제전화를 걸거나 팩스를 보내야 한다. 그의 일상은 음악 외에 가족·요리·신앙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현명하다. ‘ 단순한 삶’이야말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평생 수많은 사람을 접해 본 나로서는 인물이 두 부류로 나뉜다. ‘뛰어난 사람’과 ‘생각나는 사람’이다. 정명훈씨는 후자다. 그를 만나고 난 뒤 내면에서 잊고 지내던 명징함·투명함,그리고 순수한 삶의 자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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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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