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내려올 때 보인다

2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浮萍草 2015. 10. 3. 06:00
    김태촌에게 왜 폭력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냐고 물었더니...
    
    1986년 광복절 전야인 8월14일 오후 11시반쯤 <조선일보> 사회부에 다급한 목소리의 시민 전화가 걸려왔다.
    “사당동 대림정형외과 앞인데요. 건장한 청년 5~6명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실려 들어갔어요.”
    당직이던 나는 곧바로 바깥에서 야근을 돌던 기자 2명에게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직접 취재에 들어갔다.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병원 근처 파출소에 전화 걸었다. 
    처음 건 곳은 방배1파출소. 순경이 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이곳은 아니구나’
    방배2파출소로 전화했다. 통화가 되는 순간 시끌벅적한 소리가 귀청을 찔렀다.
    ‘아. 이곳이구나.’
    “그 관내에서 살인사건 났다면서요? 개요가 뭐예요?”
    전화를 받은 경찰이 상황을 설명했다.
    “예, 인근 깡패들이 술집에서 싸우다 칼로 찔렀는데 4명이 즉사했고 3명이 중상입니다…”
    폭력조직 간의 이권 다툼으로 발생한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의 범인 일당과 이들로부터 압수한 각종 흉기(1986년). /조선일보 DB

    사건 개요를 파악한 나는 데스크(사회부 당직팀장)에게 보고했고 데스크는 여기에다 당시 야근기자들의 현장취재까지 곁들여 기사를 내보냈다. 제보 한시간 만에 취재에서 보도까지 속전속결로 완료된 것이다. 이 사건이 광복절 아침 조선일보 1면 톱으로 보도된 그 유명한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이다.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 중진국 대열에 들어선 1980년대 중반, 서울 강남 유흥가를 낀 조폭들의 출현을 처음 알린 사건이었다. 장안의 화제는 단연 조직폭력배 세계에 집중했다. 지금은 ‘조폭’이란 단어가 일상화됐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다. 여기서 김태촌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전남 광주 폭력조직인 서방파의 두목인데 당시 청부폭력 혐의로 수배중이었다. 9월초 김태촌이 검거돼 인천 경찰서로 압송돼 조사를 받을 때 나는 자장면 배달부 행세를 하며 잠입했다. “나 <조선일보> 기자요. 당신 이야기를 그대로 쓸테니 인터뷰 합시다.” 여유만만한 자세로 조사실 정중앙에 앉아 있던 김태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소?” “우리 사나이끼리 약속합시다. 당신은 조직이 있잖소. 만약 다르게 보도되면 내게 보복하시오.” 나의 좀 ‘과격한’ 제안에 김태촌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참 형사에게 말했다. “형님, 나…저 기자하고 얘기 좀 하고 싶소.” 이렇게 돼서 경찰 묵인 하에 김태촌과 단독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는 사춘기 시절 노점상을 하던 부모님이 불량배들의 행패를 받는 모습을 보고 결국 폭력세계로 들어왔다고 한다. 인터뷰 할 때만 해도 그에게는 순수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교도소에서 성경책 보며 참회하겠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나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도 개과천선한 듯 했지만,출소 후 결국 원래 성질을 못버리고 다시 범죄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김태촌은 2013년 1월 협심증, 저혈압, 당뇨, 폐렴 등 합병증으로 64세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갔다. 더 표독스러운 인상과 더 나빠진 눈빛을 남기고. 폭력은 인간의 내면을 강퍅하게 만들고 황폐화시킨다. 우리는 김태촌의 폭력성을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폭력성은 간과한다. 남을 힘으로 제압하고, 군림하고, 빼앗고 싶어하는 그 욕망 말이다. 폭력성은 조폭같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일반인에게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무심코 툭 던진 말 한마디, 쌀쌀 맞은 문자 메시지,비난의 댓글,식당 종업원을 비롯 일상에서 마주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차가운 눈빛,퉁명스런 말투, 배려없는 생각의 편린이 상대방 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며,반대로 그런 공격에 엄청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지금 21세기는 겉으로는 스마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난폭해졌다. 날로 심화되는 왕따,막말,사이버 폭력,성도착증, 나아가 자살, 존속살인, ‘묻지마 살인’과 무차별 테러 등….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21세기 관점에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한다. 그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하고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사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자신을 증오해주길 희망한다. 수십년 전만 해도 뫼르소같은 이는 패륜아요, ‘정신이상자(사이코)’로 문자 그대로‘이방인’취급을 받았지만 지금 이런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관용적이고 평화로운’사회를 지향하는 21세기에 이처럼 폭력이 더욱 흉포화되고 내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사회가 풍요로워져도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폭력성은 늘 굶주려 있다. 김태촌이 주먹으로 폭력을 나타냈다면,우린 마음으로 폭력을 발휘한다. 폭력을 비판하고 분노하지만 어느새 폭력을 배우고 따라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김태촌과 공범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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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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