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내려올 때 보인다

3 노무현 전대통령

浮萍草 2015. 10. 5. 07:30
    노무현 구속하기 위해 하루밤에 4번 영장 청구했던 검찰
    요일이라 늦잠을 자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각.이상기(현 <아시아엔> 발행인) 전 기자협회장의 목소리다.
    “형, 뉴스 들었어요? 노통이 자살했어. 자기 집 뒷산에 올라가서….”
    “뭐라고?”
    순간적으로 오지 말아야 할 상황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결국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이다. 
    새삼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실감 났다. 
    검찰은 불과 1년 전까지 모신 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예우를 갖추지 않았고 사실상 ‘흠집 내기’ 수사를 하고 있었다. 
    ‘사고는 검찰이 쳤다. 그러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현 정권이 지겠구나.’
    2009년 5월 23일 아침 풍경이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묘한 인연이 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이후 전국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 인권변호사 사무실에서 제보가 들어왔다.
    “부산에 노무현이란 변호사가 있는데 검찰이 오늘 구속시킨다고 합니다.”
    법조 출입기자였던 나는 저녁 늦게 서소문 대검청사(현 서울시 별관 건물)에 들러 10층 공안부 사무실로 올라갔다. 
    구내 전화를 슬며시 집어 들고 부산지검 당직실에 전화했다.
    “노무현 변호사 영장 발부됐어요?”
    “어…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담당 판사가 기각을 하는 바람에 다시 청구했습니다.”

    나를 대검 직원으로 잘못 안 부산지검 당직자는 순순히 설명을 했다. “이미 보고드린 것인데…. 오늘 꼭 구속시켜야 된다며 검사님들이 다른 판사님을 찾아갔고 그분도 거절하니까 아예 수석부장판사 댁으로 갔습니다.” 순간 상황이 특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상 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는 바로 석방돼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와 새벽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취재했다. 검찰 사상 전무후무한 하룻밤 4번 영장청구사건은 그렇게 취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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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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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이명박 정권 모두 잡으려 했던 검찰
    미 새벽 기사 마감시간은 지나갔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증폭시키려면 어젯밤 검찰의 ‘일탈행위’가 즉시 알려져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석간에 보도돼야 한다! 나는 속이 쓰렸지만 내용을 법조기자실에 오전 10시 넘어 알렸다. 
    중앙·동아·경향 등 석간 3개 신문은 낮 12시 발행되는 첫 판에 크게 실었다. 
    당초 영장을 재청구하려던 검찰은 오후 노변호사를 석방할 수 밖에 없었고 무명의 노무현은 이날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나는 이 사건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한국일보 김이택 기자(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가 2009년 노 대통령 자살 후 쓴 칼럼에서 취재 경위를 밝혔다. 
    노 전대통령이 자살하기 전날인 5월 22일(금요일) 저녁 나는 공교롭게도 청와대에서 검찰을 담당하고 있는 민정수석실 직원들과 식사를 했다. 
    솔직히 나는 검찰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방식이 마음에 걸렸다.
    “왜 검찰이 그래? 기소도 하지 않고 어정쩡한 수사를 계속하면서… 너무 한 것 아냐?”
    “검찰이 양쪽 다 잡으려고 합니다.”
    “양쪽 다라니?”
    “과거 권력 노통과 현재 권력 모두 말입니다.”
    검찰이 노통 쪽과 함께 MB의 대학 친구인 천신일씨 수사도 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칼끝이 이상득 의원으로 향할 것이라는 얘기였다(실제 그렇게 됐다).
    “뭐야. 그러면 이 나라가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야. 검찰이 상지상(上至上)인…, 도대체 민정수석실은 뭐해?”
     “지금 검찰이 청와대 말을 듣습니까?”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귀가한 다음 날 아침 나는 노 전 대통령 자살 비보(悲報)를 전해 들어야만 했다. 
    노무현은 비극적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호락호락한 스타일이 아니다. 
    노무현은 평소 강한 정의감과 개혁의지를 나타냈다. 
    대통령 시절에도 그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못참고 여과 없이 비판했다.
    당시 그는 스스로 정의(正義)롭다고 여긴 것 같았다. 사실 인간은 누구도 정의롭지 못한 데 말이다. 자신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을 ‘불의(不義)’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 비판하고 불의스럽게 여겼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자신이나 가족에게서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대통령으로서 그는 참을성이 많거나 온유하거나 관용적 인간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흠모하는 다윗왕(King David, ?~BC 961)이 생각났다.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부하 장군의 아내(밧세바)를 탐한 나머지 그 장군을 사지에 빠뜨려 죽게 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는 패륜을 저지른다. 그런 인생을 살았는데도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장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왜 그럴까. 그는 공(功)도 많이 세웠지만 인간적 측면에서 볼 때 평생 관용(寬容)과 용서(容恕)의 사람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이 있다. 죄를 짓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포용하고 용서해야 한다. 물론 용서는 때로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사실, 용서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상처 입은 과거(過去)에 대한 치유요,예측 불가한 미래(未來)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아쉬움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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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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