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내려올 때 보인다

1 민병돈 전 육사교장

浮萍草 2015. 10. 1. 07:00
    강직함 속에 감춰진 하심(下心)의 사나이
    민병돈 전 육사교장.
    /조선일보 DB
    1987년 6월,6·10 항쟁을 계기로 전국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넥타이 부대까지 시위에 가담하자 정부가 군을 출동시킬 것이라는 풍문이 나돈다. 실제로 19일엔 육군총장발(發) 작전 명령이 떨어진다. 당장 대통령 한 마디면 대부분의 군이 소요진압 작전에 투입된다는 의미다. 그때 한 사람이 결심한다. 이를 어떻게든 막겠다고. 만약 대통령이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청와대를 점령하는 쿠데타까지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거사 직전, 그는 대통령에게 군 출동 명령을 재고해달라는 여론과 취소 요청을 전한다. 이를 고명승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전두환 대통령은 묻는다. “누가 주도하는가?” “민병돈 특전사령관입니다.” “뭐야? 민병돈이…?” 순간 전 대통령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알았어, 가봐.”
    그 며칠 뒤 6·29 선언이 이뤄진다. 역사를 만드는 건 사람이다. 항상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변수다. 그래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가 나타난다. 1980년대까지 군은 우리나라 ‘최고 실세’였다. 아무도 군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군 생활을 한 민병돈은 ‘하나회’ 출신 육사 15기 대표주자이자 전두환 측근이었다.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상반됐다.

    그의 별명은 ‘민따로’였다. 대세나 관행을 안 따르고 ‘소신’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가난한 시절 군내에서도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그러나 민병돈은 ‘상납’ 관행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부정선거를 거부하고 자유 투표를 독려했다. 수도권 요직인 20사단장 시절, 1985.2.12. 총선때 부정선거를 거부하는 바람에 다음 코스인 수방사령관(중장)으로 영전 못하고 준장 보직인 육본 정보참모 차장 으로 강등됐다. 특전사령관 시절, 1988년 서울올림픽 테러에 대비한 사격 훈련시 스스로 ‘총알받이’를 자처하기도 했다. 주저하는 병사들에게 방탄복을 입고 “나부터 먼저 쏴라”고 지시,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실제 실탄 사격을 벌이는 훈련이 실시되기도 했다. 이런 강인한 군인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의 기본 성품도 그렇지만 실권자인 전두환의 총애,하나회 군맥의 묵시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의 선배라도 옳지 않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면 “노(No)!”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1989년 내가 국방부 출입기자를 할 때였다. 육사교장이던 민병돈은 군 선배이자 통수권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육사 졸업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북방정책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우리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장 진급을 목전에 둔 장군이 직을 걸고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민병돈은 옷을 벗었다. 그러나 그가 ‘진짜 군인’이란 사실은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중3때 6.25가 터졌을 때 학도병으로 자진해서 참전했고 총상을 입었다. 지휘관 시절, 그는 ‘FM 군인’으로 부하들을 엄하게 다뤘다. 그러나 가난한 휴가병에게는 주머니를 털어 차비와 닭 한 마리 사갈 돈을 쥐어주는 인간적 체취도 있었다. 강직함 속에 감춰진 하심(下心)의 사나이 그는 위만 바라보기 쉬운 군대 계급 사회에서 드물게 아래를 굽어 살피며 살아왔고 계급이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군인 으로서 나아갈 원칙과 소신으로 살아온,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참 군인이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10년전 신문사를 나와 고생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그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얼마나 힘들어. 식사나 해.” 우린 식당에서 설렁탕에 소주 한 병을 나눠 먹었다. 그날 그 점심이 지금도 내겐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 만에 그를 만났다. 저녁 무렵이 되자 그는 40년전 대대장 시절 자신을 따르던 하사관(부사관)이 왕십리 지하철역 부근에서 라면집을 개업해 축하해주러 간다고 일어섰다. 예순이 넘은 부하의 새 길을 격려하기 위해 시청 전철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팔순 퇴역군인의 뒷모습…. 순간 내 마음 속에 뭉클한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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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한국문화포럼 이사장(現) jmed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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