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26 운악성의(雲岳性義)

浮萍草 2015. 10. 26. 00:00
    은해사의 宗師
    師之性情雲白山 淸行己由貞敎人 以明滌世塵之利 名勤道業於蓮城 實相非于形死生 丹靑何用七分評 “스님의 성정은 구름 흰 산으로 청정한 행은 올바른 가르침을 의지한 것이다. 밝고 맑게 함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니 정토에 이르는 도업을 부지런히 하였다. 실상은 형상의 나고 죽음이 아니니 그려진 진영으로 어찌 평을 할까?” 해사에 소장되어 있는 운악성의(雲岳性義, 1818~1831 활동)선사 진영에 실린 설허지첨(雪虛知添, 19세기 전반 활동)의 영찬이다. 찬자인 설허스님은 영파성규(1728~1812)의 제자로 환성지안과 함월해원의 법맥을 계승했다. <영천은해사사적(永川銀海寺事蹟)>에 의하면 설허스님은 1797년경에 은해사 운부암의 조실(祖室)로 주석하면서 스승인 영파 노덕(老德)을 모시고 있었다. 18세기 후반 은해사에 세거하기 시작한 영파문도는 스승이 입적하자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남공철(南公轍, 1760~1840)에게 글을 받아 1818년에 은해사에 석비 (石碑)를 세울 정도로 영향력 있는 문중으로 성장했으며 그 주축에는 설허스님이 있었다. 설허스님 또한 입적 후 그의 진영이 은해사 운부암과 김룡사 화장암에 봉안됐다. 진영의 주인공인 운악스님은 찬자인 설허스님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1978년에 형준(炯埈)스님이 편찬한<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 따르면 운암스님은 환성지안-용암신감(龍岩信鑑)-대암국탄(大庵國坦)-무하옥명(無瑕玉明) -호계효헌(虎溪曉軒)-월파달희(月坡達熙)의 법맥을 이었다. 은해사에는 운암스님만이 아니라 월파달희의 진영도 전하고 있어 영파문중과 같은 시기에 은해사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단편적인 자료이지만 은해사에는 운악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다. 1816년에 건립된 영파성규의 비에 운악스님은 은해사 종사(宗師)로 기록됐으며 1818년 은해사 백흥암 단청,1829년 은해사 거조암 대법당 중수 불사에 참여하고 은해사 기기암 아미타회상도(19세기 전반),수도사 괘불도 중수(1822),은해사 양진암 신중도(1831)에 증사(證師)를 맡아 은해사 승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운암스님의 진영이 제작되자 제자들은 은해사에서 함께 지내온 설허스님에게 찬문을 부탁하였을 것이다. 설허스님은 진영을 바라보며 고귀한 성품과 지남철과 같은 행동으로 세상을 밝히고 염불선을 닦은 운암스님의 삶을 찬문으로 녹여 후세가 기억토록 했다.
    ☞ 불교신문 Vol 3136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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