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25 영파성규(影波聖奎)

浮萍草 2015. 10. 25. 00:00
    영파스님 참모습
    爾是眞耶 我是眞耶 若據本來人面目 則二皆非眞 咄 秋水連天 乾坤若無 廓落無影 色相何求 네가 참모습이냐 내가 참모습이냐 만약 본래 모습에 의거한다면 둘 다 참 모습이 아니다 아~ 가을 물은 하늘과 이어져 하늘과 땅이 없는 것 같다. 성곽이 무너져 그림자도 없으니 색과 모양에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천 용문사에 소장된 영파성규(影波聖奎, 1728~1812) 선사 진영에 실린 자찬(自讚)이다. 이 글은 영파스님이 완성된 자신의 진영을 보고 지은 것이다. 영찬에는 그림 속과 현실 속 자신 가운데 어떤 것도 ‘참모습(眞)’이 아니며 빛깔과 형상에 구애받지 말라는 경구가 담겨 있다. 형상에 현혹되지 말고 참모습을 찾기를 원했던 영파스님의 바람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입멸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다르마(法)를 등불삼아 수행하라는 가르침과 상통한다. 부처님의 유훈에도 불구하고 불상과 불화를 조성해 부처님을 예경하였듯 선사의 당부에도 남겨진 제자들은 진영을 제작해 기리고자 하였다. 비록 진영이 스승의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라도 참모습을 뵙고자 했던 제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이해한 듯 서산스님은 자신의 진영을 보고 “80년 전에는 네가 나였으나 80년 뒤에 내가 너이겠구나(八十年前渠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찬을 남겨 이들의 뜻을 품고자 했다. 영파스님은 서산스님의 6세손으로 편양언기,환성지안,함월해원의 법맥을 계승했다. 스님은 대흥사 12대강사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교학, 선, 염불에 해박하였으며 은해사 운부암에 주석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스님이 입적하자 스님을 따르던 문도는 은해사에 승탑과 비문을 세우고 은해사와 운부암을 비롯해 김룡사 화장암,용문사,통도사 등에 진영을 봉안했다. 통도사를 제외한 다른 사찰은 하나의 본(本)을 가지고 모사한 듯 표현이 서로 유사하다. 다만 용문사본인 경우 영찬 말미에 1883년 3월에 다시 그린 기록이 있다(癸未三月日 六世孫雪海珉淨謹敬于焚香改造).진영을 그린 설해민정(雪海珉淨)은 19세기 후반 경상북도에서 이름을 떨치던 화승(畵僧)으로 영파스님의 6세손이다. 설해스님은 진영을 다시 그리면서 선사(先師)의 참모습을 지키면서 다른 진영에서 볼 수 없는 인자함을 더하였다.
    ☞ 불교신문 Vol 3134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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