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24 청봉거안(靑峰巨岸)

浮萍草 2015. 10. 24. 00:00
    두타와 화엄의 지음(知音)
    夏雲白 春峰靑 雲白非是白 峰靑不是靑 廣行頭陁兮 月白雪白道心白 遍懺華嚴兮 天靑海靑慧眼靑 “여름 구름 희고 봄 산봉우리 푸르다. 널리 두타행을 행하니 달도 희고 눈도 희고 도심도 희다. 화엄참을 펼치니 하늘이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지혜의 눈도 푸르다.” 갑사에 소장된 청봉거안(靑峰巨岸, 18세기 후반 활동) 선사 진영에 실려 있는 영파성규(影波聖奎,1728~1812)의 영찬이다. 이 글은 영파스님이 80세인 을축년 봄인 1805년에 지은 것이다. 진영의 주인공 청봉스님과 찬자(撰者) 영파스님은 모두 호암스님의 손상좌이다. 스승으로 청봉스님은 호암체정(1687~1748)을 모시고 영파스님은 함월해원(涵月海源, 1691~1770)을 모셨다. 청봉스님은 행장이나 비문이 전하지 않지만 그의 법맥은 율봉청고(栗峰靑杲, 1738~1823)를 거쳐 경허성우(鏡虛惺牛,1849~1912)로 이어져 현대 한국 불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단편이지만 청봉스님의 수행 생활을 유추할만한 기록들이 18세기에 활동한 스님들 문집에서 찾을 수 있다. <몽암대사문집(夢庵大師文集)>에는 해인사 대장전에 올리는 공양이 부족하고 새벽과 밤에 대장경을 수호하고 청소할 이가 없자 청봉스님이 불량계(佛糧契)를 모집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스님은 호남에 주석하면서 해인사 대장전을 위해 자신의 의발(衣鉢)을 팔고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천릿길을 나서 계원을 모집할 정도로 서원(誓願)을 이루기 위한 강인한 의지와 활동을 펼쳤다. 또한 뛰어난 제자들을 양성할 정도로 수행자로서의 역량 또한 뛰어났다. 함월스님은 “나의 거문고가 서쪽에서 온 곡조를 연주하자(吾將三尺琴 彈出西來曲) 그 소리를 아는 이 세상에 없고 오직 스님만이 알고 되돌아보네(塵世少知音 惟師還識得)”라는 글을 청봉스님에게 주며 그의 자질을 인정하였다. 청봉스님의 진면목은 함월스님의 제자인 영파스님이 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두타행으로 도심(道心)이 희고 화엄참으로 지혜의 눈이 푸르다는 찬문의 글귀는 선과 교학의 행함과 밝음에 막힘이 없는 청봉스님에 대한 동시대를 살아간 영파 스님의 예우와 존경이 담겨 있다.
    ☞ 불교신문 Vol 3132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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