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5 야봉환선(冶峰幻善)

浮萍草 2015. 10. 15. 00:00
    “해인사에 꽃 핀 상봉문중 嫡傳”
    公之德行 純善無雜 面帶雲露 心藏水月 我作贊詞 實不愧葦 “스님의 덕행은 순수하고 선하다. 얼굴은 상서로운 구름을 띠고 마음에 수월을 담았다. 내가 찬사를 지으니 참으로 부끄럽다.” 인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야봉환선(冶峰幻善1752~1773 활동)선사 진영에 실린 영찬이다. 찬자는 누군지 알 수 없으나 영찬을 통해 계행에 부끄럼 없이 맑고 밝은 용모에 자애한 마음을 간직한 모습으로 찬하면서 야봉스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현재 야봉스님의 삶과 사상을 유추할 만한 행장은 전하지 않지만 다행히 진영 뒷면에 간략하지만 스님의 스승과 몰년(沒年)이 기록되어 있다. 스님의 휘는 환선이며 낙암 화상의 제자로 1773년 4월18일 입적했다. 해인사 관음전에 진영이 모셔지고 제사에 소용되는 비용을 대는 토지를 두었다. 기록대로 야봉스님은 상봉정원(1627~1709)의 법맥을 계승한 낙암의눌(1666~1737)의 제자이다. 그의 법명인 환선(幻善)은 1752년에 유가사에 세워진 낙암의눌 비에 사법(嗣法) 제자로 또렷이 새겨져 있다. 18세기 해인사에는 낙암스님과 제자인 호은유기,학봉원정,야봉환선 등이 활동하면서 상당한 세력을 유지했다. 이를 반영하듯 해인사 곳곳에는 많은 스님들의 진영이 봉안되어있고 특히 관음전에는 낙암스님과 야봉스님의 진영이 나란히 모셔졌다. 낙암스님 진영에도 야봉스님 진영과 마찬가지로 뒷면에 휘와 기일(忌日),봉안처와 영답(影畓) 등이 기록되어 두 진영은 같은 해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스승과 제자가 같은 봉안처에 모셔졌다는 사실은 18세기 해인사에서는 여러 제자 가운데 야봉스님을 낙암스님의 적전(嫡傳)으로 인식하였음을 의미한다. 진영 속 야봉스님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마른 체구의 인물로, 녹록치 않은 성품의 소유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적으로 진영 속 스님들은 불자를 들고 있는데 비해 야봉스님은 여의(如意)를 양손에 쥐고 경상(經床)에는 경전이 펼쳐져 있다. 영찬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의와 경전으로 보아 스님은 교학에 밝고 강설(講說)을 즐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 불교신문 Vol 3114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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