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4 학봉원정(壑峰元淨)

浮萍草 2015. 10. 14. 00:00
    “영산회상의 몇 번째 존자인가?”
    衲裡西天寶月藏輝 杖頭東極名山交影 松林六十一臈祗是 無心胎性移之數幅 霜綃不問真幻而 無心則同無量刧来 色非空 古松岩壑颯颯長風 聸之者 不覺攢手誦阿彌陀 是靈山會上 苐幾位尊者 嗟哉 空門舍利愼莫疎 此畵勝似千層塔裏牟尼顆 “옷 안에 서천의 황금빛을 감추고 주장자는 동국의 명산에 그림자로 비추네. 육십일년 송림에서 지낸 무심한 성품을 진영에 옮겨놓으니 영정의 진실과 허깨비를 묻지 않고 무심함에 곧 무량겁이 오는 것과 같다. 색은 공이 아니다. 골 깊은 바위골짜기 노송에 바람 불면, 보는 이는 몰란결에 두 손을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부른다. 영산회상에 몇 번째 존자이신가? 아~, 공문의 사리를 소홀히 대하지 마라. 이 그림의 수승하기가 천 층 탑 속의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와 같네.” 인사 홍제암에 모셔진 학봉원정(壑峰元淨, 1744~1754 활동) 선사의 진영에 실린 이미(李瀰, 1725~1779)의 영찬이다. 비록 학봉스님에 대한 행장은 전하지 않지만 이미의 영찬에 스님을 영산회상의 존자로 비유할 정도로 60여 년 간 수행하면서 불교의 요체를 체득하고 그 명성이 전국에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는 영조·정조대 경상도 관찰사,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인물로 학봉스님의 영찬을 비롯해 기성쾌선(箕城快善, 1693~1764) 등의 비문을 지었다. 이미와 기성스님은 제자 보월혜징(寶月慧澄)스님을 통해 그 인연이 맺어 있으며 학봉스님과 이미의 관계 또한 이와 같았을 것이다. 1744년에 이미는 보월스님을 만나 기성스님의 교학과 선(禪)의 높은 경지를 듣게 되었다. 1770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보월스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지속하였고 부제학이 된 후에는 스님의 청으로 기성스님의 비문을 짓기도 했다. 학봉스님과 기성스님은 상봉정원(霜峰淨源,1627~1709)의 3세손이며 보월스님에게 학봉스님은 사숙(私淑)이다. 1752년에 낙암의눌(洛巖義訥, 1666~1737)스님의 비를 유가사에 세울 때 학봉스님은 제자,보월스님은 집사(執事)로서 불사를 함께 마무리했다. 보월스님이 이미 에게 스승의 비문을 부탁하듯 사숙인 학봉스님의 영찬 또한 부탁하였을 것이다.
    ☞ 불교신문 Vol 3112 ☜      
    제찬 해제=정안스님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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