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7 예봉평신(禮峯平信)

浮萍草 2015. 10. 17. 00:00
    해인사 위해 모든 것을 비우다
    日鋤 夜執念珠坐燈前 補寺空諸所有 事事無間一心專 區區一身 己知假寓 世法佛法 早是以爲戱具 生不生死不死 壽量何曾有短長 兒孫不親到者 爲先留影在堂 낮에는 호미 들고 밭을 매고 밤에는 염주 잡고 등불 앞에 앉았다. 절을 보수하는 데는 있는 것 모두를 비웠고 일할 때에는 쉼 없이 일심으로 진력했다. 보잘 것 없는 이 한 몸 거짓임을 안다. 세상 법이든 부처님 법이든 일찍이 희롱하는 도구이니 나고 죽는 것이 아니다. 목숨에 어찌 길고 짧음이 있겠는가? 자손들도 친히 가려 하지 않으니 먼저 진영을 당에 모셔둔다. 인사 홍제암에 모셔진 예봉평신(禮峯平信, 19세기후반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남천한규(南泉瀚奎)의 영찬이다. 찬자인 남천스님은 예봉스님의 손상좌로 완허장섭(玩虛仗涉)의 제자이다. 이들은 18세기부터 해인사에 세거했던 상봉정원(霜峰淨源, 1627~1709)의 후손들이다. 19세기 후반 예봉스님은 해인사에 머물면서 불화를 조성하고 전각을 수리하는데 수백금(數百金)을 시주하였으며 해인사와 산내암자에 토지를 헌납하는 등 사찰 운영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이와같은 스님의 행보는 절을 보수하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비우고 일에 있어서도 일심으로 진력했다는 영찬 내용 그대로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체구에 선한 인상을 한 스님의 모습은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수행을 하였다는 내용처럼 소박하고 수행을 추구했던 스님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처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인사를 위해 노력했던 스님을 기억하기 위해 문도는 홍제암에 승탑과 비를 세우고 진영을 모셨다.
    ☞ 불교신문 Vol 3118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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