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2 송파각민(松坡覺敏)

浮萍草 2015. 10. 12. 00:00
    사명스님을 계승하다
    氣采食 困束則眠 나물 캐서 먹고 피곤하면 잔다. 眉毫白 頂珠圓 눈썹은 희고 이마는 둥글다.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 月滿空潭 雲在天 달은 하늘 연못에 가득하고 구름은 하늘에 있다.” 지사에 모셔진 송파각민(松坡覺敏, 1596~1675) 선사 진영에 실린 운가(雲稼) 심기택 (沈璂澤, 1826~?)의 영찬이다. 심기택은 <석씨선교원류서(釋氏禪敎源流敍)> <불경내력(佛經來歷)>을 쓸 정도로 불교에 조예가 깊었고 여러 스님의 진영에 찬문을 지을 정도로 불교에 호의적 이었다. 송파스님은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서 한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호구계주(虎丘戒珠),벽암각성(碧巖覺性),임성충언(任性沖彦),송월응상(松月應祥)스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스님은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에 해박했으며 유·불·도를 깊이 연구해 <해의(解疑)>를 저술하기도 했다. 정관일선(靜觀一禪), 임성충언과의 법연이 언급되지만 송파스님의 문도는 1676년 용연사에 승탑과 탑비를 세우면서 스님이 사명유정의 법손이자 송월응상 (松月應祥, 1572~1645)의 제자임을 대외적으로 표명했다. 송파스님 진영이 모셔진 직지사는 사명스님의 출가사찰이자 주지로 역임했던 곳이다. 18세기 후반에 작성된 직지사 사적기에는 당시 직지사에 사명스님과 호구스님의 승탑과 더불어 송파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고 전한다. 18세기 이후 사명문중이 쇠락하면서 직지사에서는 사명스님을 제외하고 그의 후손들은 점차 잊혀갔다. 현전하는 송파스님 진영은 19세기 후반에 새로 그린 것이다. 진영을 중수하면서 송파스님의 영찬은 당시 금산(金山, 현 김천) 군수였던 심기택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송파스님의 삶과 사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듯 찬문에는 스님의 요체가 담겨있지 않다.
    ☞ 불교신문 Vol 3106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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