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9 우운진희(友雲眞熙)

浮萍草 2015. 10. 9. 00:00
    ‘서천 정맥’ 통도사 근간 마련하다
    法門標準 軌度寬繛 心懷大道 手秉靈鍔 潮海閃電 晴天迅爍 振五宗綱 碎三關鑰 原有其係 西天正絡 彷彿七分 格思斯侘 “법문은 표준이며 법도는 너그러워 마음에 대도를 품었고 손에는 신비한 검을 잡았네. 물결치는 바다의 섬광 맑은 하늘에 벽력 오종의 근본 뜻을 떨치고 세 가지 관문을 부수네. 원래 그런 계보가 있으니 서천의 정맥이다. 닮은 진영의 품격과 사상이 이러하다.” 통도사 소장 우운진희(友雲眞熙, 1652~1694 활동)선사 진영에 실린 호운도언(灝雲度彦, 19세기 중엽 활동)의 영찬이다. 호운스님은 화봉유철(華峯有喆)의 제자로 통도사 취운암에서 스승을 모시면서 화봉스님이 1843년 통도사 영자전 중창할 때에 힘을 더했다. 영자전 중창 이후 선사(先師)의 낡은 진영들은 차례로 새로 제작되었고 이 과정 중 호운스님은 우운스님 진영에 찬문을 남겼다. 우운스님은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의 손상좌이자 계월학눌(桂月學訥)의 제자이다. 스님은 17세기 후반 통도사 대웅전을 중창하고 금강계단 수리를 마무리하는 등 전란에 훼손된 가람 복구를 주도하였다. 1694년 통도사에 스님의 정골(頂骨)을 모신 승탑이 세워졌고 사리는 용천사, 범어사, 적천사 등 영남의 9개 사찰에 나누어 모셔졌다. 18세기 이후 소요문중은 통도사에서 쇠락하였지만 우운스님은 중창주로서 타문중에서 높이 받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호운스님은 설송연초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통도사의 근간을 마련한 우운스님께 존경을 담아 선사로서의 위상을 찬탄하는 영찬을 지었다. 진영 속 우운스님은 장염주를 쥐고 주장자를 쥔 채 결가부좌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스님은 의자와 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이 어색한 조합은 새로 진영을 제작하면서 의자에 앉아 있던 옛 모습을 결가부좌로 변형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 불교신문 Vol 3100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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