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0 도봉유문(道峯有聞)

浮萍草 2015. 10. 10. 00:00
    “도봉이 옳은가 그른가”
    頂骨聳翠 若山之成峯 巒坐然有爲道氣像 所以號道峯者 是也歟曰非也 師之所證之道 即无明實性及幻化空身也 道峯之號 在世時從其俗也 “정수리에 솟은 푸르름은 마치 산의 봉우리와 같고 넓게 앉은 장엄함은 도의 기상을 이루었네. 도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스님이 증득하신 도는 무명실성과 환화공신이니 도봉이라는 부르는 것은 속세에 있을 뿐이네.” 문사에 모셔진 도봉유문(道峯有聞, 1786~1800 활동) 진영에 실린 응허의진(應虛意珍)의 영찬이다. 가야산인(伽倻山人) 응허스님의 행장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03년에 쌍계사 단확기(丹雘記)를 지은 것으로 보아 도봉스님 영찬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쓴 것으로 보인다. 도봉스님은 설송연초의 3세손이자 태허남붕(太虛南鵬)의 제자로 강주(講主)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화엄에 해박하여 의상스님의 법성게를 해석한 <대방광불화엄경법성게과주(大方廣佛華嚴經法性偈科註)>를 저술하기도 했다. 운문사는 도봉스님만이 아니라 설송연초, 태허남붕, 그리고 제자 성파현척(聖坡賢陟) 등 4대(代)의 진영과 승탑이 모셔질 정도로 설송문중의 세거(世居)사찰이다. 도봉스님은 1780년경에 주석처를 은해사 백흥암으로 옮겨 영산전을 중창하고 감로도를 제작하는 등 불사에 앞장섰으며 그곳에서 여러 제자를 길러냈다. 입적 후 스님의 진영은 운문사와 은해사, 은해사 백흥암에 모셔졌다. 두 사찰에 모셔진 진영들은 “정수리에 솟은 푸르름은 산봉우리와 같다”는 찬문대로 누가 봐도 같은 분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 정수리가 불룩 솟아 있다. 차이라면 은해사 진영이 노년의 스님을 묘사했다면 운문사 진영은 이보다 젊은 시절을 표현했다. 스님의 이같은 외모는 진영에 고스란히 담겨 후손들에게 각인됐고,응허스님도 이런 특징을 ‘도봉(道峯)’이라는 법호와 실어 스님이 이룬 깨달음의 깊이를 찬탄했다
    ☞ 불교신문 Vol 3102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